노동계·참여연대 등 광화문서 시위
"영리병원 안돼"… 문재인정부 압박
제주도, 개설 허가 결정 미루다
"중앙정부와 논의 필요" … 공 넘겨
"인력도 뽑고 건물도 들어섰는데"
지역주민들, 병원 조속 운영 요구
[ 이지현/임유 기자 ]
지난해 문을 열 계획이었던 국내 첫 투자개방형 국제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출발도 못 하고 표류하고 있다. 건물을 다 짓고 채용까지 끝냈지만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막혀 개원 허가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병원 인근지역 주민들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허가를 서둘러야 한다고 토로했다.
정의당과 무상의료운동본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41개 노동·시민단체 등은 9일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는 녹지국제병원 승인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2개 단체가 반대 성명을 발표한 것과 비교하면 시민단체 목소리가 한층 커진 셈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말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권을 가진 원희룡 제주지사는 “녹지국제병원 허가 여부를 청와대, 보건복지부 등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지는 결정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원 지사가 한발 물러선 데다 노동·시민단체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면서 녹지국제병원 개원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녹지국제병원은 국내 첫 투자개방형 국제병원이다. 제주도, 경제자유구역 등에만 설립할 수 있는 투자개방형 국제병원은 국내 다른 의료기관과 달리 외부 투자를 받고 수익을 배당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계약을 맺지 않고 운영해 진료비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외국 의사가 직접 진료하는 것도 가능하다.
중국 뤼디그룹은 778억원을 투입해 47개 병상 규모 녹지국제병원을 짓기로 하고 2015년 4월 제주도에 사업계획서를 냈다. 같은 해 12월 보건복지부는 이를 승인했다. 병원 설립 주체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지난해 하반기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일부 부지에 녹지국제병원을 짓고 도에 개원허가 신청서를 냈다. 제주도 보건의료심의위원회에서 개설허가 여부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고 최종 결정권한은 원 지사에게 넘어간 상태다. 녹지국제병원은 지난해 9월 간호사 등 직원 139명을 채용하고 개원을 준비 중이다.
시민단체들은 녹지국제병원의 실질적 운영권이 국내 비영리 의료법인인 미래의료재단에 있다고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중국 뤼디그룹이 운영한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국내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무늬만 국제병원이라는 지적이다. 미래의료재단 측은 이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병원 인근지역 주민들은 답답해하고 있다. 김재현 서귀포시 동홍동 마을회장은 “지역주민 몇몇은 채용돼 근무하고 있는데 병원 허가가 나야 나머지 공사도 이뤄질 수 있다”며 “복지부 승인을 받아 심의단계만 남았는데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공사가 중단돼 흉물로 남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병원 인근지역 주민대표들은 지난해 12월 중순 원 지사를 만나 ‘녹지국제병원이 조속히 개원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지현/임유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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