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지나친 규제가 부정부패 조장한다

입력 2018-01-08 18:35
부패의 경제적 비용 세계 GDP의 2%
정책운용, 의사결정의 투명성 높여야

최희남 < IMF 상임이사 >


전 세계에 걸쳐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작년 독일의 한 글로벌 기업은 그간 관행적으로 인정했던 외국 공공부문 판매에 대한 수수료(커미션)를 즉각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한 아프리카 국가에서 지급한 사례금이 문제가 되면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회사가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도’ 평가 50 이하인 국가에서는 판매수수료 지급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왔다는 사실이다.

부정부패는 ‘공적인 권한을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보통 영향력이 큰 기업이 정치권이나 공무원과 결탁해 공공기관에 영향을 미치고 정책결정 과정에 관여하거나 정부 계약과 입찰 과정에서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도 부정부패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 부정부패가 한 나라의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macro-critical) 때문이다.

부정부패는 정부의 정책 수행을 저해한다. 필요한 세수를 확보할 수 없게 하고, 정부지출에서도 경제적 효과가 있거나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분야보다는 뇌물을 받을 수 있는 분야로 전환하게 한다. 생산성을 떨어뜨려 성장을 저해한다. 결국 정부가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지출과 지속성장이 가능한 투자를 줄이게 돼 공정과 형평에 어긋나게 되고 포용적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

부정부패의 경제적 비용을 정확히 추계하기는 어렵지만 뇌물공여만 연간 1조5000억~2조달러 규모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한다고 한다. 드러나지 않은 부정부패와 장기적 효과를 감안하면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뢰의 상실’이다. 정부정책과 기관,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상승시키고 정치 불안을 초래한다. 몇 년 전 아랍 국가를 휩쓴 소요사태는 광범위한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청년들에게 특히 심한 좌절감을 안겨줄 것이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실력을 쌓기 위해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노력하기보다는 연고에 의존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희망과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된 공기업의 채용비리가 그런 사례라 할 수 있다.

부정부패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하기 어렵다. 국가별 상황에 맞게 접근해야 한다. IMF는 투명성 제고, 법의 지배, 경제개혁과 규제개혁, 관련 기관 설립이라는 네 가지 전략을 활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정부 정책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재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고 불법적인 거래를 효과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국가의 법률과 제도를 예측 가능하게 하고 공평하게 집행하는 것도 부정부패가 설 자리를 없앨 수 있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는 지대추구행위를 조장하게 되고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뇌물을 제공하고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든다. 또 책임 있는 기관 설립으로 부정부패 척결을 앞장서서 추진할 수 있다.

반(反)부패 대응전략이 효과적으로 집행되기 위해서는 국가 지도자가 솔선수범하고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싱가포르 독립 이후 리콴유 총리가 보여준 부패 척결 의지와 신념은 싱가포르를 부정부패가 없는 청정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깨끗한 정부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도덕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부정부패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크는 독버섯 같은 존재다. 창문을 열고 햇살이 구석구석에 비치도록 해 정책운용과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더욱 높여야 할 것이다.

최희남 < IMF 상임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