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한 평창 참가'가 전부일 수 없다

입력 2018-01-08 18:27
"2년 만에 재개되는 남북 고위급회담
'도발→대화' 기만술책 직시하고
북핵·미사일에 대한 결기 보여줘야"

조영기 < 고려대 교수·한선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시사하며 뜻밖의 ‘유화 제스처’를 보였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는 2개의 중심 내용으로 이뤄졌다. 첫째, ‘국가핵무력 완성’을 2017년의 최대 치적으로 강조한 뒤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승리 쟁취’를 2018년의 혁명적 구호로 제시했다. 둘째,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에서 남북 현안을 해결하자는 통남봉미(通南封美)의 대남통일전선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신년사 3분의 1 정도 시간을 할애, 평창 동계올림픽을 매개로 한 통남봉미 카드를 제시했다. 이는 전형적인 위장평화 공세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의 실질적 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기만술책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 첫 국무회의 발언에서 북한의 대화 제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후 통일부가 판문점 남북고위급 회담을 9일 열기로 제안했고, 북한이 이를 수락하면서 2년여 만에 남북대화가 성사되게 됐다. 그러나 북한이 제안한 ‘평창 동계올림픽 문제와 남북 관계개선 문제’라는 의제를 보면 남북한이 회담에서 얻고자 하는 기대수준은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남북관계 개선문제는 정치·군사·경제의 복잡한 문제가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북한은 이산가족상봉을 미끼로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고위급회담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첫 남북 공식만남이라는 점에서 정부로서는 큰 기대를 하는 모습이다. 물론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상수가 있어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올 신년사 핵심축인 ‘국가핵무력 완성’의 위협은 벌써 잊고 대화에만 매달리는 모습은 아무래도 염려된다. 북한 참가선수단 숙박을 위한 크루즈선 지원, 미녀응원단 참가 등을 기정사실로 몰아가는 모습들에서 6차 핵실험의 위험성은 이미 오래전 과거사로 치부되는 실정이다.

물론 “과거처럼 유약하게 대화만 추구하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다짐은 다소 위안이 된다. 하지만 대화와 협력에 방점을 둔 그간의 행보를 볼 때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또 지난해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가 제재와 압박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적폐로 규정한 ‘자아비판서’를 제출한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한은 벌써부터 회담의 기선을 잡기 위한 정지작업에 골몰하고 있다. ‘민족공조’라는 감성적 용어를 앞세워 “민족적 화해와 연북통일을 위한 분위기 조성”을 남북관계 개선으로 규정하고 “구실과 법적·제도적 장치를 내세워 남북관계 개선을 반대하는 것은 기만술책”이며,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북침전쟁연습”이라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4차례의 핵실험과 8차례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가 있었다. 이는 북한이 언제든지 대화국면을 도발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번 고위급회담은 ‘도발→제재→대화→(경제적)지원→도발’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발판을 마련하는 회담이어야 한다. 사실 북한이 ‘도발→대화’의 술책을 반복해온 것은 우리가 북한의 비정상성을 방치해온 탓도 크다. 그동안 북한의 대외 폭력성을 단호히 응징하지 않고 묵인해온 결과 폭력성의 확장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다시 ‘고난의 행군’을 우려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런 시기에 북한이 들고나온 ‘통남봉미 카드’는 북한의 핵폐기 및 근원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우리가 역이용할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통남봉미 카드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협상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이끌어 내되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최종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와 ‘근본적 변화’를 유도하는 일이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무산되더라도 끌려가지 않겠다는 결기가 필요하다.

조영기 < 고려대 교수·한선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