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미디어 뉴스룸-MONEY] 협곡에 일군 천 년 차밭… 자연과 공존해 온 삶터

입력 2018-01-05 18:19
수정 2018-01-06 07:04
사람과 땅, 농업유산
하동 전통차농업


아침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섬진강가에 섰다. 고요한 마을 뒤로 물기를 머금은 초록빛이 반짝인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서니, 몽실몽실 구름처럼 퍼져 있는 자연형 차밭이 드러났다. 산기슭에 핀 차밭이다. 굴곡진 지리산에 야생처럼 자라 있는 차나무와 커다란 돌, 밤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서울에서 버스로 약 4시간, 경남 하동군 화개면은 지리산 줄기를 따라 마을을 이루고 있다. 지역 전체가 해발 100~1000m의 산지인 전통 수제 차 생산 지역이다. 2017년 11월 말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는 경사를 맞았다. 공식 명칭은 하동 전통차농업. 그 유명한 화개장터에서 섬진강을 왼쪽으로 끼고 올라가면 차 재배의 핵심 지역에 이른다. 하동군은 13개 읍·면 전역에서 차 재배가 이뤄지는데, 그중에서도 이곳 북서부에 있는 화개면이 전체 녹차 생산량의 87.8%를 차지한다.

중국의 푸얼 전통차농업, 재스민과 차 문화, 일본의 시즈오카 차농업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차 관련 농업유산으로 선정된 하동 전통차농업의 가치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역사성, 농업 경관, 생물 다양성, 차 문화 등이다. 가장 큰 차이는 ‘공존’이라는 키워드에 담겨 있다.

가파른 산비탈에 일군 차밭은 그 자체로 역경 속에 피어올린 꽃이다. 면적의 93%가 산지다. 화개 사람들은 화개천 협곡의 경사지를 중심으로 차농업 문화를 일궈 왔다. 그 세월이 무려 1200여 년이다. 화개천 양쪽으로 옹기종기 모인 주거지와 인근의 전통 차밭이 함께 존재하는 형태는 제주나 전남 보성과는 다른 풍경이다. 하나의 지역공동체로서 땅을 기반으로 서로 연결돼 있는 모습이다. 소수의 부농이 아니라 다수의 농가, 가족 단위로 차 재배와 생산이 이뤄지기에 그렇다.

일찍이 이곳 주민들은 인위적인 차밭 관리를 최소화하고 자연 상태 그대로의 찻잎을 따 왔다. 보통 자생차나무는 산비탈에 있어 기계를 이용한 찻잎 수확이 힘들다. 현재까지도 채다(採茶)는 사람에 의해 한 잎씩 손으로 찻잎을 따서 모으는 전통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화개의 차밭은 크게 두 개의 형태로 이뤄져 있다. 산속에 있는 자연형 차밭에서 평지의 논과 밭에 조성한 차밭이다. 자연형 차밭이 전통 수제 차로 역사성을 간직한다면, 2000년대 이후부터는 차농업 확산과 함께 주변 마을의 평평한 경작지를 차밭으로 전환한 평지 차밭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주로 평지 차밭에서는 녹차 티백을 만든다.

이곳에는 홍소술 화개제다 명인, 김동근 쌍계제다 명인을 비롯해 세 명의 차 명인이 존재한다. 그 밖에도 크고 작은 다원이 수백 개에 이른다. 뜨거운 가마솥에 손을 넣어 아홉 번 차를 덖어내는 ‘구중 구포’는 이들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이다. 1년에 딱 한 번, 4월 중순 차의 첫 잎을 따는 시기에 농가마다 자신의 노하우를 가진 차를 만들어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화개 지역에는 유난히 불교 문화가 융성했다. 사찰과 승려가 많았던 사하촌으로 ‘지리산 불교’라 불릴 정도였다. 스님과 화개 주민들은 함께 차밭을 재배해 하동 지역만의 차농업 지식 체계를 공유, 전승해 왔다.

하동=이현주 한경머니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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