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훈/고재연 기자 ]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안에 산업용 심야 전기요금을 올리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그동안 “기업이 가정용 전기에 비해 과도하게 싼 요금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산업용 심야 전기료는 일반 시간대에 비해 34.4~46.2% 싸다.
산업용 심야 전기료를 올려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전문가들은 “밤에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기업은 주로 대기업”이라며 “중소기업은 야간 조업하기가 쉽지 않아 낮에 주로 전기를 쓰는데 이들 중소기업이 대기업 요금을 보조하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정부가 태양광발전소를 늘리겠다고 공언했는데 심야에 전기를 많이 쓰면 원자력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 의존도를 줄이기 힘들다”고 말한다. 태양광은 낮에만 전력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기업이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분산형 발전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심야 전기료를 올리면 낮 시간에 전력 수요가 몰려 2011년처럼 정전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최저임금 및 법인세 인상, 근로시간 단축에 이어 전기료까지 인상하면 기업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최근 심야 전기 사용량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이는 산업용 때문이라기보다는 전기를 이용하는 난방기기 보급이 증가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찬성] 심야전기료 원가보다 크게 낮아 밤 시간 전력소비 필요이상 늘려
기업이 스스로 전기 생산하는 분산형 발전 확대를
최근 에너지 전환에 따른 전기요금 논쟁과 함께 ‘산업용 경부하요금’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산업용 경부하요금이란 전력 수요가 적은 밤 시간대(경부하) 요금을 저렴하게 하고 수요가 몰리는 낮 시간대(피크부하) 요금은 비싸게 해 산업용 전력 수요를 밤 시간대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전력 공급자 입장에서 보자면 피크시간대 수요를 줄여 전력 부족 가능성을 낮추고, 비싼 발전기 대신 밤에도 돌아가고 저렴한 원자력발전이나 석탄발전의 가동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수요자 입장에서도 조업 시간을 밤 시간대로 조정하면 그만큼 요금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전력 수급의 양 측면에서 필요한 요금 제도다.
하지만 좋은 것도 과하면 문제가 되듯이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그 취지를 과도하게 적용해 경부하요금은 해당 시간의 공급 원가보다 아주 낮게 책정하고 피크요금은 공급 원가보다 높게 책정해왔다. 그 결과 비싼 발전설비와 저렴한 발전설비 간 비용 차이가 두 배를 넘지 않음에도 경부하요금과 피크요금은 최고 3.4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런 과도한 요금 격차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유발한다.
첫째, 밤 시간대의 산업용 전력 소비를 필요 이상으로 늘리고 낮 시간대 전력 소비는 지나치게 줄이는 결과를 유발한다. 여기에 최근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 지원까지 가세해 비싼 배터리를 활용해 밤 시간대에 저장한 전력을 낮 시간대에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도하게 벌어진 요금 탓에 값비싼 ESS의 경제성이 부풀려지고 이로 인한 과잉 투자가 유발되고 있다.
둘째, 과도한 요금 격차로 인해 낮 시간대에 주로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원가 이상의 요금)이 밤 시간대에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기업(원가 이하 요금)에 요금을 보조하는 결과가 된다. 전자는 주로 중소기업이고 후자는 대부분 대기업이라는 점,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조업 시간을 야간으로 바꾸기 매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요금 격차는 형평성에 맞지 않고 최근 강조되고 있는 중소기업 육성 및 활성화 정책에도 역행한다.
셋째, 원가 이하의 저렴한 경부하요금은 밤 시간대 수요 증가를 촉발해 환경에 상대적으로 부담을 많이 주는 원전과 석탄발전 비중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과도하게 높아진 원전과 석탄발전 비중을 고려할 때 환경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최근 논의되고 있는 에너지 전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상의 경제성·형평성·환경성 측면에서 볼 때 산업용 경부하요금은 원가 수준으로 인상하고 반대로 피크요금은 하향 조정해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고 낮 시간대의 전력 부족이나 공급 불안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발전설비가 남아돌 만큼 여유가 있고, 일부 저탄소 발전설비들은 낮 시간대 가동률 저하로 적자에 내몰린 상황이다.
물론 산업용 경부하요금이 정상화되면 밤 시간대에 전력 소비가 많은 일부 기업 부담이 다소 증가할 것이다. 이들 기업은 이를 계기로 조업 시간 정상화 및 야간근로 축소로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여건이 허락되는 기업들은 차제에 전력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는 친환경 분산형 발전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전 세계 전력 패러다임이 4차 산업혁명의 일환으로 친환경 자가발전이나 분산형 발전으로 급변하고 있고, 세계 유수의 대기업들이 앞다퉈 친환경 전력 사용을 선언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친환경적인 자가발전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이와 관련한 새로운 사업 경험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요금 인상을 부담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전력 및 에너지에 대한 발상의 전환과 혁신적 해법을 도모할 시점이다.
[반대] 낮 시간 전력수요 이미 포화상태… 심야수요 옮겨가면 더 악화될 것
"전기료 부담 크게 는다" 산업계 우려 고려해야
산업용 전기의 심야 시간 할인폭이 크게 축소될 모양이다. 심야의 전력 소비를 분산시켜 전력 소비의 ‘효율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심야 시간은 어차피 하루 중 전력 소비가 가장 적은 ‘경부하대(輕負荷帶)’다. 낮 시간의 수급 상황을 악화시키는 대책을 ‘효율화’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주목한 것은 심야 전력피크 상황이다. 2009년 63.73GW였던 심야의 피크 소비량이 2012년에는 72.84GW로 늘어났고, 작년에는 78.47GW를 기록했다. 하지만 심야의 전력피크는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매서운 찬바람이 밀려 내려오는 1월 중에 간헐적으로 몇 차례 발생할 뿐이다. 예외적인 며칠을 제외한 심야의 전력 수요는 원전(22.5GW)과 석탄화력(36.8GW)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멀쩡한 심야의 전력 소비를 굳이 낮 시간으로 이동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낮 시간의 전력 수요는 이미 포화 상태다. 재생에너지(3.1GW)까지 모두 동원해도 감당하기 어렵다. 발전 단가가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도 가동해야 한다. 심야의 산업용 전력 수요까지 추가되면 상황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발전 비용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칫하면 전력 수급에 심각한 어려움이 생긴다. 실제로 낮 시간에 갑자기 치솟는 전력 수요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가 은밀한 ‘급전지시’를 통해 공장 가동을 억지로 중지시킨 경우도 잦았다. 2011년의 ‘순환정전’도 역시 낮 시간에 일어났다.
‘에너지 전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30년에도 낮 시간에만 가동되는 태양광에 의한 추가 전력은 고작 8.8GW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용 심야 전기요금의 차등 조정은 전력 소비의 현실을 엉뚱하게 파악한 ‘선무당급’ 전문가들이 내놓은 엉터리 처방이다.
물론 1월의 심야에 발생하는 전력피크를 외면할 수는 없다. 겨울철 심야의 전력피크가 국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맹추위가 밀어닥친 심야에 전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전기 이외의 난방 수단을 갖추지 못한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위중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소비자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겨울철 심야 전력피크는 산업용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겨울철이라고 심야의 산업용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발전 설비가 남아돌던 1990년대 말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난방용 전력 수요다. 유류세의 과도한 인상으로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싸지면서 전기난방이 일반화됐다. 심지어 비닐하우스 난방에도 전기를 쓴다. 많은 사회적 비용을 들여 어렵게 생산한 최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난방에 낭비하는 비효율을 바로잡는 것이 진정한 ‘효율화’다. 엉뚱한 진단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기요금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산업계와 언론의 우려도 심각하다. 과연 산업부가 낮 시간의 전기요금을 낮춰 기업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해 주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일부 기업의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지금까지 일곱 차례의 기본계획에 제시된 수요 전망은 절망적일 정도로 엉터리였다. 8차 기본계획에서는 2016년의 피크수요를 의도적으로 누락시켜 수요 전망을 놀라울 정도로 왜곡시켰다. 전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자격 전문가들에게 기본계획을 맡기는 잘못된 관행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태양광·풍력이 친환경이라는 환상도 버려야 한다.
이태훈/고재연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