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론' 반박한 서울대 공대생
4차 산업혁명 넘어 우주 내다봐
'꿈'이 이끄는 혁신성장이어야"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지난해 2학기 서울대 공대에서 개설한 ‘기술경영의사결정론’ 수강생 100명에게 물어봤다.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이 말한 ‘미국의 성장은 끝났다’라는 ‘성장 종말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다수 학생은 “산업혁명 후 지난 250년간 성장은 특이한 것”이라는 고든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디지털 혁명, 4차 산업혁명에 큰 기대를 걸지 말라는 그의 주장에도 비판적이었다.
공대생은 산업혁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차(時差)를 제대로 고려했는지, 성장 측정 방법론상 오류는 없었는지 등의 문제를 제기한 에릭 브린욜프슨의 손을 들어줬다. “지금까지 모든 비관적 전망은 틀렸다”는 경제사학자 조엘 모커를 지지한다고도 말했다. 놀라운 것은 적지 않은 학생이 “우주가 있다”고 말한 점이다. 고든이 더는 나오지 않는다고 한 ‘위대한 혁신’이 우주에서 터질 거라는 데 한 표를 던진 것이다.
일본판 로버트 고든, 미즈노 가즈오는 《자본주의의 종언과 역사의 위기》에서 “‘싼 에너지’와 ‘지리적 시장’을 축으로 한 자본주의 파티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1970년대 에너지 파동과 베트남전 패배로 한계에 부딪힌 미국 자본주의가 ‘사이버 공간’, ‘금융 공간’ 등으로 출구를 찾아 나섰지만, 각각 거품에 부닥치면서 더 이상 뻗어나갈 여지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즈노가 자본주의 종말의 결정적 증거라고 했던 ‘긴 저금리 시대’는 막을 내리려고 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만 해도 지난 닷컴 버블을 비웃듯 인공지능(AI)으로 재무장해 질주하고, 우주와의 결합으로 또 다른 빅뱅을 예고한다. 자본주의가 미즈노가 말한 ‘보이는 지구’의 한계를 넘어 ‘디지털 지구’, ‘지구 밖의 우주’라는 새 공간으로 뻗어가는 양상이다.
대항해시대 최고 항해기술을 가진 나라가 세계를 주도했다는 걸 잘 아는 미국이 우주시대 리더십을 포기할 리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과학예산 난도질’에도 의회가 중심을 잡으면서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탐사 예산 확보에 성공했다. 주목할 것은 신우주활동법 등 세계 최초로 상업우주개발을 인정한 ‘우주 미국’의 또 다른 진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스페이스X, 제프 베저스 아마존 CEO의 블루 오리진, 구글의 플래니터리 리소스 등 ‘우주벤처’가 ‘뉴 스페이스’를 열고 있다.
일본은 우주정책을 확 바꿨다. 안보 목적 군사 이용을 허용하더니, 우주를 4차 산업혁명을 가속화시킬 ‘프런티어 산업’으로 선언했다. ‘미치비키 4호’ 발사 성공으로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독자 위성항법시스템(GPS) 구축도 눈앞에 뒀다. 이런 흐름 속에 우주벤처가 속속 출현하고 있다.
‘우주는 덩치 큰 나라나 할 수 있다’는 편견도 깨지는 중이다. 세계 최대 위성운영회사로 꼽히는 SES를 보유한 룩셈부르크는 우주자원 탐사 및 이용의 ‘유럽 허브’를 꿈꾼다. 큰 나라 또는 정부 독점 우주가 더는 아니다.
어차피 한국은 정부 연구개발예산을 우주에 다 퍼부어도 미국을 따라가기 벅차다. 예산 타령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주가 과거처럼 정부 독점이면 추격하기 어렵겠지만, 민간 벤처가 우주시장 파이를 키우고 국제분업을 촉발하면 한국에도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다.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기업가형 국가》에서 국가 역할로 ‘프런티어 개척’을 말했다. 정부는 ‘씨’를 뿌리고, 기업은 ‘시장’을 만들어내는 형태다. 이참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정부출연연구소 울타리를 뛰어넘어 ‘우주벤처 요람’으로 재탄생하는 건 어떤가.
미국에서는 문화요, 종교라는 ‘스타워즈’. 이 세계를 흐르는 에너지와 기운, 이른바 ‘포스’에는 빛과 어둠의 양 측면이 있다. 서울대 공대생의 ‘성장 종말론’ 부정은 ‘빛의 포스’라고 할 만하다.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혁신성장’에는 이런 포스가 없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