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위안부 합의한 것은 사실… 풀기 쉽지않은 측면 있다"

입력 2018-01-04 17:41
수정 2018-01-05 06:16
위안부 할머니 8명 '국빈급 의전'으로 초청해 청와대서 오찬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고려해 합의파기 어렵다는 점 밝힌 듯

문 대통령 "대통령으로서 사과 드린다…합의 내용·절차 모두 잘못"
할머니들 "사죄만 받게 해달라"

강경화 "파기 등 모두 가능하지만 결과에 대해 생각하고 결정해야"


[ 손성태/조미현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4일 한·일 간 위안부 합의 문제와 관련, “과거 정부가 공식적으로 합의한 것도 사실이니 양국관계 속에서 풀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병문안한 자리에서다. 문 대통령은 “할머니들께서 바라시는 대로 다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정부가 최선을 다할 테니 마음을 편히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위로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전면 파기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에둘러 시사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국빈급 의전 차량 제공

문 대통령은 김 할머니 병문안 이후 청와대에서 위안부 할머니 여덟 분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할머니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할머니들의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한 것에 대해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위안부 피해 당사자에게 공식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합의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정부가 할머니들의 의견을 안 듣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으로서 지난 합의가 양국 간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천명했다”며 “오늘 할머니들께서 편하게 여러 말씀을 해주시면 정부 방침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대통령께서 여러 가지로 애쓰시는데 부담 드리는 것 같지만 이 문제는 해결해 주셔야 한다”고 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어린아이를 끌어다 총질, 칼질, 매질하고 죽게까지 해놓고 지금 와서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면서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사죄만 받게 해달라. 대통령과 정부를 믿는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있는 ‘나눔의 집’에 의전 차량과 경찰 에스코트 차량을 보내 국빈급 예우로 모셔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숙 여사는 오찬 뒤 할머니들에게 일일이 목도리를 선물로 걸어주었고, 문 대통령은 할머니들의 요청에 따라 김 여사와 함께 한 사람씩 기념촬영을 했다.

◆‘합의 파기’와 ‘재협상’ 외 제3의 해결책은

문 대통령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청취한 만큼 정부의 후속 조치가 곧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예정된 10일 이전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여러 차례 피해자 중심의 해결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기존 합의 파기나 재협상 쪽으로 끌고 가기엔 정부로서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김 할머니를 병문안한 자리에서 “양국 관계 속에서 풀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사전 양해를 구한 것은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후속 조치는 위안부 문제를 양국 외교관계에서 분리해 접근하는 ‘투 트랙’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입장 발표에서 “역사는 역사대로 진실과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다뤄갈 것”이라면서도 “동시에 역사 문제 해결과는 별도로 한·일 간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위해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회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로 인한 갈등 현안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인정하면서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는 이른바 ‘사드식 해법’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려면 파기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모든 게 가능하다”는 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다만 강 장관은 “그렇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도 충분한 생각을 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부연하면서 합의 파기나 재협상 등 극단적인 조치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손성태/조미현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