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승국 한올바이오파마 대표
2010년 도전했던 자가면역질환제
효능 제대로 안 나와 딜레마 빠져
정부 신약개발사업단 지원 '단비'
연구 포기 않게된 원동력 됐죠
8년만에 빛 본 자가면역질환제
작년 美·中 2건 기술수출 대박
계약규모 총 5억8360만 달러
글로벌 임상이 관건
신약 개발땐 가격·안전성 개선
여러 질환에 적용 가능 획기적
[ 전예진 기자 ]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곳 중 하나는 한올바이오파마다. 작년 9월 중국 하버바이오메드에 이어 12월 미국 로이반트사이언스와 두 건의 기술수출 계약에 성공했다. 계약 규모만 총 5억8350만달러(약 6300억원). 작년 기술수출을 성사시킨 기업 중 최대 금액이다. 박승국 한올바이오파마 대표는 이 같은 성과에도 초연한 듯 보였다. 고비를 여러 번 넘겨왔기 때문이다. 한올바이오파마의 자가면역질환 신약이 빛을 보기까지는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임상 실패와 자금 조달 문제로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도 여러 차례였다. 적자에 시달리다 대웅제약에 인수됐지만 성공 가능성을 묻는 질문과 끊임없이 맞서야 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실패와 도전에 대한 박 대표의 생각은 남달랐다. 그는 실패 원인에 대해 “틀렸을 수도 있고 증명이 안 될 수도 있다”며 “그러기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남들이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기의 기로에서
한올바이오파마가 기술수출한 자가면역질환 신약 ‘HL161BKN’도 처음엔 실패한 프로젝트였다. 2010년 2월 기존 치료제와 작용 기전이 완전히 다른 항체를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2년 동안 결과가 좋지 않았다. 박 대표는 “우리가 생각한 신약 후보물질이 동물실험에서 효능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내부적으로 딜레마에 빠졌고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저항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연구비가 바닥난 상황에서 정부의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이 손을 내밀었다. 2012년 9월 8억원을 지원받아 처음부터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100억원 이상의 연구비가 이미 들어갔으니 큰 금액은 아니었죠. 그렇지만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힘이 됐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으니까요.”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면서 2015년 2월 정부로부터 24억원을 추가로 지원받았다. 기술수출 기회도 찾아왔다. 희귀질환 치료제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미국 박살타가 관심을 보인 것이다. 1년간 지난한 협상이 마무리될 무렵 다국적 제약사 샤이어가 박살타를 320억달러(약 39조원)에 인수한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렸다. 박살타는 문제 없다고 했지만 회사를 인수한 샤이어는 당장 성과가 나오는 프로젝트에 집중하길 원했다. 계약은 물거품이 됐다. 박 대표는 “다국적 제약사와 상대하는 방법과 협상 전략을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실패가 대박의 밀알
그는 과거에도 기술수출이 무산됐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미국 진출 1호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C형간염 치료제 ‘한페론(HL-143)’이 그랬다. 50억원을 들여 미국 임상 2상을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끝내 임상 3상 파트너를 찾지 못했다. “임상 결과가 좋아 증권사도 만나고 홍보를 많이 했습니다. 주가도 올라갔죠.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구도 한페론에 투자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길리어드가 C형간염 치료제 ‘소발디’와 ‘하보니’를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시장의 흐름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겁니다.” 박 대표는 “거짓말쟁이가 돼버려서 이후로 몇 년 동안 입을 닫고 살았다”고 했다.
한페론은 사장됐지만 기회를 가져다줬다. 살길을 찾기 위해 추진한 프로젝트가 ‘대박’을 터뜨린 자가면역질환 신약이었다. 두 차례 기술수출 실패를 계기로 미국 로이반트사이언스와의 계약은 유리한 조건에서 진행됐다. 미국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다른 곳에서도 제안이 와서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로이반트는 새로운 자회사를 만들어 우리 물질을 우선순위로 개발하겠다고 약속했죠. 무엇보다 기술수출 이후에도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고 공동 개발할 수 있는 파트너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 전 기술수출을 추진했을 때보다 계약 규모도 커졌다. 계약금 3000만달러(약 324억원)에 연구비 2000만달러(약 214억원)를 지원받고 임상시험과 판매허가 등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도 4억5250만달러에 달한다. 박 대표는 “2년 전 기술수출했다면 개발 속도가 더 빨라졌을 수 있다”면서도 “경험할 건 다 해봤으니 후회는 없다”고 했다.
가지 않은 길에 도전
박 대표는 ‘HL161BKN’의 과제 선정부터 연구개발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여러 후보 중 자가면역질환을 택한 것은 질환이 다양한데 원인이 불분명해 적절한 치료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가면역질환은 외부 병원균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항체가 자기 몸을 공격하면서 100여 가지 이상의 질환으로 나타납니다. 항체가 근육세포를 공격하면 눈꺼풀이 가라앉고 심장 근육까지 멈추는 중증근무력증이 생기고 혈소판 감소증, 천포창, 시신경척수염, 다발신경병증으로도 발현되죠. 환자가 많은 류머티즘관절염이나 크론병은 여러 가지 약이 개발돼 있지만 이런 병은 마땅한 약이 없습니다.”
현재 치료법은 환자의 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 자가항체를 걸러낸 뒤 다시 넣어주는 혈장분리반출술과 대량의 혈액으로부터 모은 항체분자(면역글로불린)를 정맥에 투여해 자가항체를 희석시키는 주사요법이 사용되고 있다. 자기를 공격하는 자가항체 농도를 낮춰주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1주일가량 입원이 필요한 데다 저칼슘혈증, 급성신부전, 바이러스 감염 등 부작용으로 환자가 힘들어한다는 단점이 있다. 효과는 일시적이지만 비용도 많이 든다. 혈액 투석 한 번에 8만달러, 면역글로불린은 1회 주사에 2만달러로 미국 시장 규모만 75억달러(약 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올바이오파마는 자가항체 분해를 촉진하는 작용기전에 주목했다. 자가항체를 몸속에 축적시키는 FcRn이라는 수용체를 억제하면 자가항체가 제거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원숭이로 실험한 결과 HL161BKN이 기존 치료법보다 자가항체를 현저히 낮춰준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동안 개발된 적이 없는 새로운 방식의 혁신 신약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죠.”
올해 중국 미국 등에서 임상 돌입
박 대표는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약효, 가격, 안전성 측면에서 획기적 개선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1주일 1회 주사에 5만달러 정도면 현재 치료법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올바이오파마 외에도 다국적 제약사 UCB, 바이오기업 아레넥스 등 경쟁사 2~3곳이 FcRn을 활용한 유사 기전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경쟁사는 최근 동물이 아니라 사람을 대상으로 효능을 입증한 데이터를 발표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박 대표는 “경쟁사가 가능성을 입증해준 셈”이라며 성공을 자신했다. “경쟁사는 대용량 정맥주사로 1주일에 1~2회 링거를 맞고 있어야 하지만 HL161BKN은 인슐린 같은 피하주사 형태로 환자 스스로 맞을 수 있고 1~2주에 한 번만 맞으면 된다”며 “우리는 약물 주입량은 줄이면서 유효물질을 고농도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핵심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HL161BKN은 올해부터 중국 미국 유럽에서 임상에 들어간다. 미국과 유럽에선 로이반트사이언스가 3개 적응증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한 뒤 2020년 시판 허가를 신청해 2023년까지 3개 제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기술수출도 준비하고 있다. “여러 질환에 적용될 수 있는 플랫폼 성격을 지닌 제품이어서 지역의 특성과 유병률에 따라 다양한 임상을 해 공유하는 구도를 만들겠다”는 게 박 대표의 계획이다.
자가면역질환 신약 외에도 미국에서 진행 중인 안구건조증 치료제 ‘HL036’의 임상 2상 결과가 올 3분기에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기술수출도 추진할 예정이다. “HL161BKN은 계획대로 출시되면 매년 20억~30억달러의 글로벌 매출이 기대되는 약입니다. 신속허가를 받으면 2022년 이전에도 제품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HL036도 관심을 보이는 곳이 있어서 이번 임상 데이터가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이죠.”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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