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인구 2만명 팔라우의 힘

입력 2018-01-02 17:44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340여 개 섬으로 이뤄진 태평양의 작은 나라 팔라우. 강화도보다 조금 더 큰 면적에 인구는 2만1500여 명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가깝다. 관광업 비중이 국내총생산의 50%에 이른다. 지난해 외국 관광객은 11만3300여 명. 이 가운데 절반이 중국인이었다.

최근 이 나라가 중국과 ‘맞짱’을 뜨면서 국제 뉴스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여행 금지를 내세우며 “대만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라”는 중국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드 관련 보복’과 비슷한 행태에 정면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 작은 나라의 저력과 결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먼저 굴곡진 역사에서 체득한 실용주의 노선과 ‘신뢰 중시’ 외교력을 꼽을 수 있다. 16세기 스페인에 점령당한 이 나라는 19세기 말 독일, 1차대전 때 일본, 2차대전 때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1946년 유엔 신탁통치를 거쳐 1980년 자체 헌법을 제정했고, 8차례의 주민 투표를 통해 국민 합의를 이룬 뒤 1994년 독립했다.

이 과정에서 외교·안보, 경제 분야의 국가 경영 방향을 확고히 정했다. 지정학적 특성상 국방 문제는 미국의 도움을 받고 경제 분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독립 직후 수교한 대만으로부터 사회 인프라 구축에 큰 도움을 받았다. 의회의사당과 주요 호텔을 대만 자본으로 지었다. 미국과는 자유연합협정으로 경제·사회적 협력을 강화했다.

이렇다 할 산업도, 자원도 없는 상황에서는 최선의 길이었다. 국내외 현안에서도 서두르지 않고 장기 비전을 중시했다. 2차대전 종전 후 독립하기까지 반세기에 걸쳐 국가 경영의 기반을 다졌다. 중국의 강압에 맞서 “우리는 법치국가이자 민주국가로서 대만과의 돈독한 관계를 바꿀 계획이 전혀 없다”고 단언하는 힘이 여기서 나왔다. 2012년에는 불법 조업을 한 중국 어선에 발포해 선장을 사살하기도 했다. 확고한 안보 동맹과 오랜 ‘신뢰 외교’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유커 안 와도 상관없다”는 팔라우의 역공에 중국은 잔뜩 체면을 구겼다. 팔라우의 바다 등 청정 자연은 놀랄 만큼 아름답다. 괌이나 사이판보다 깨끗해서 전 세계 다이버들에게 ‘신들의 정원’으로 불린다. 오히려 유커들로서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금지 구역’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와의 인연도 많다. 팔라우 최대 공사인 85㎞ 왕복 2차로 도로를 대우건설이 완공했다. 한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할 때 팔라우를 중심으로 한 14개 태평양 도서국의 지지를 얻었다. 한류 인기도 높다. 나라는 작지만 국제사회에서 대국과 동등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팔라우. 우리에겐 새로운 태평양 교두보이기도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