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자산의 90%는 예금자 몫
주주가 경영진 면책 의결은 불합리
상법에 앞서 '면책금지' 입법화 필요"
홍복기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저축은행이 파산하면 돌려받을 수 없는 ‘동일인 5000만원 초과 예금액’이 지난해 9월 말 현재 5조원을 넘었다고 한다. 이 수치가 5조원대를 넘어선 것은 2011년 2월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 이후 처음이다. 저금리 시대라 금리를 조금이라도 더 주는 곳으로 자금이 쏠린 것이다.
저축은행과 같은 금융회사도 기업이므로 건전한 회사지배구조가 요구된다. 금융 중개자로서의 역할, 예금의 안전한 보호, 금융위기 때처럼 은행 지배구조의 실패에 따른 경제적 파장, 금융시스템의 국제화 등을 생각하면 금융회사의 건전한 지배구조는 금융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회사지배구조원칙을 바탕으로 금융기관의 지배구조개선과 감독기관의 역할을 강조한다. 특히 은행의 경우 재무구조가 부실해지면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등 국가경제 전체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각별히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금융기관은 일반 회사보다 많은 규제가 따른다. 또 신용협동조합, 상호보험회사 등을 제외한 금융회사는 대부분 주식회사이므로 상법의 주식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 다만 금융회사는 ‘은행법’ ‘자본시장법’ ‘보험업법’ 등 업종별 특별법이 제정돼 있는데, 이들 특별법에 지배구조에 관한 규정이 있는 경우 상법에 우선해 적용한다. 소수주주권의 행사요건, 사외이사의 선임 및 운영, 감사위원회의 구성에 관한 사항 등이다.
그런데 상법을 금융기관에 적용하면 불합리한 일이 발생한다. 그중 하나가 상법 제400조의 ‘총주주의 동의에 의한 이사와 감사의 책임 면제’다. 이 조항에 따르면 이사와 감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은 주주 전원의 동의로 면제할 수 있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회사를 위해 노력한 임원의 과실에 대한 책임을 주주 모두가 합의해서 면제할 수 있다는 것이므로 일단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금융회사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금융회사, 특히 은행은 고객 예금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우리은행의 2017년도 반기 재무제표를 보자. 자산 316조원 대비 자본이 20조원, 부채가 296조원이다. 전체 자산의 6.8%가 주주 몫이고, 나머지 93.2%가 채권자, 즉 예금자 몫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전자의 2017년도 반기 재무제표를 보자. 전체 자산 278조원 중 자본은 201조원, 부채는 77조원이다. 전체 자산의 72.3%가 주주 몫이다.
이런 구조에서 금융기관의 주주가 상법 400조에 따라 회사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한 임원을 면책해준다면 피해는 누가 볼 것인가.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예금자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 은행의 도산은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는 동시에 예금자에게 금전적 손실을 끼친다. 따라서 은행 경영진은 주주보다도 예금자 등 은행 이해관계인의 이익보호를 더 중시해야 한다.
금융회사 임원들의 임무 위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예금보험공사는 영업 정지된 금융회사의 대주주,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손실을 보전한다. 상법에 따라 그 책임이 면제된다면 손실은 예금자와 국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는 지난해 3월 한 저축은행의 임직원 임무 위배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2016다259073)에서 현실화됐다.
따라서 은행 등 금융기관의 이사 및 감사의 책임에 관해 주주 전원의 동의가 있더라도 면제하지 못하도록 ‘예금자보호법’ 또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등 관련 특별법에서 입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처럼 금융기관의 불량한 지배구조는 은행의 자산관리 능력에 대한 시장의 확신을 잃게 하며 이는 은행의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로 인한 연쇄도산 또는 유동성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홍복기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