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품 만든다고 잘 팔리진 않아
대기업 연계 해외 판매 도모하고
모바일커머스로 고객 접점 늘려야
정재필 < 한국MD협회 협회장 >
지난 15년간 유통업계 상품기획자(MD)로 일하면서 8000여 명의 중소기업 사장 및 관계자를 만났다. 식품부터 가전까지 다양한 영역의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소비재 상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상당수 중소기업은 제품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 중소기업 성장사를 되짚어 보면 정부 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자원빈곤 국가로서 정부는 1960년대부터 제조업을 강조했고, 중소기업은 노동과 기술이 집약된 상품 및 제품을 주로 생산했다. 그리고 모든 생산품은 수출로 귀결됐다. 반면 유통구조는 시장 도소매, 백화점이 주를 이뤘다. 온라인 유통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때까지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지 못했다. 즉 상품만 예쁘고 맛있고 쓸 만하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는 얘기다.
오늘날 유통구조는 완전히 달라졌다. 필자는 홈쇼핑, 대형마트, 인터넷에서 다양한 고객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해왔다. 좋은 상품이 반드시 잘 팔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체험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매장은 상품이 어디 진열돼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홈쇼핑 방송은 무슨 요일, 몇 시에 방송하는지가 상품력보다 더 핵심 사안이다. 인터넷 쇼핑몰이라면 어느 제품군에 진열돼 있는지가 매출을 좌우한다. 그런데 여전히 제조업체인 생산자들은 ‘좋은 상품’을 생산하는 데만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조자가 상품(제품)을 만드는 목적은 판매를 위해서인데도 말이다.
원가에서부터 출발하는 가격결정(pricing) 방식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격은 종종 ‘가치(value)’라는 말로 대체된다. 내 상품의 가격은 고객이 결정하는 가치를 숫자로 전환한 것이다. 신상품을 기획하고 생산할 때 상품에 책정한 가격이 고객이 느낄 가치를 숫자로 표현한 가격과 얼마나 거리감이 있는지는 상품의 성공 여부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객이 아니라 제조(생산)자 처지에서 상품을 기획하고, 고객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유통과 판매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제는 생산자들이 직접 ‘유통’을 배워야 한다. 국내 유통시장은 드러그스토어, 편의점, 방문판매, 모바일 판매 등 너무나 복잡하게 세분화돼 있다. 내가 만든 상품이 어떤 시장에서 어떻게, 누구에게, 얼마나 팔리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공급이 수요를 넘어선 시장이다. 기업인들이 더 많이 팔려면 해외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해외 진출 방식으로 B2B(기업과 기업 간 거래)만 염두에 둘 필요도 없다. 동반성장이란 도구를 이용해 보자. 과거 롯데그룹과 창업진흥원이 주최한 행사를 통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국내 중소기업 상품의 판매를 대행한 경험이 있다. 한류 열풍이라는 문화적 요소도 있었지만 우리 중소기업이 만든 우수한 아이디어 상품은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신비한 상품들이란 점을 깨달았다. 현지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에 충분했다.
한국 중소기업이 판매와 유통에 더 초점을 맞춘다면 성장 여지는 많다. 한국은 한때 인터넷 인프라에서 세계 최정상급으로 평가받았지만 새롭게 열린 모바일커머스(스마트폰 유통시장)에서 중국(알리바바)과 미국(아마존) 등에 밀려 움츠러들고 있다. 기술력이 뛰어나고 생산자가 만족스럽다고 해서 좋은 상품은 아니다. 매출이 많이 나오고 고객이 만족해야 좋은 상품이다.
정재필 < 한국MD협회 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