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공기업 사장들에 이어 한국개발연구원장 등 국책연구기관장들도 줄줄이 사퇴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임기가 남아 있는 공공기관장 사퇴가 이어지면서 온갖 소문이 나돈다. 누구는 연말까지 거취를 정하라는 통보를 받았고, 누구는 거부하다가 본인은 물론 기관까지 감사를 받고 있다는 얘기들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장면이다.
정권이 교체됐다고 해도 공공기관장 인사가 장막 뒤에 가려진 손에 의해 이런 식으로 휘둘린다는 건 정상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할 바엔 공공기관장 임기제도는 왜 도입했으며, 경영평가는 왜 매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권 교체가 법과 규정을 무시해도 되는 정당한 사유일 수는 없다.
지난 15년 동안 국회의장을 지낸 인사들은 제헌 70주년을 맞아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며, 특히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감사원장 등 5개 권력기관장 인사권을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고 했다. 권력의 칼자루를 쥔 쪽이 맘대로 하면 비겁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려는 싸움판이 끝이 없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권력기관만이 문제겠는가. 정부가 인사권을 가진 공공기관장이라고 해도 최소한 임기제는 존중하는 게 맞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이 남아 있는 공공기관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인사가 줄을 섰다고 한다. 청탁이 빗발치고, 누구 줄을 잡아야 한다는 등 이전투구판이 따로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민영화된 통신기업 회장 자리에 앉겠다는 사람만 60명에 달한다고 할 정도다. 이렇게 해선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임기제를 도입했으면 지키는 게 마땅하다. 전문연구기관 등은 기관장이 연임이 가능해야 지식이 축적될 수 있다. 그게 어렵다면 여야가 정권 교체 시 어느 공공기관장은 바로 바꿀지, 어느 공공기관장은 임기제를 존중할지를 구분하고 이를 준수하겠다는 합의라도 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인사가 불확실해서야 제대로 돌아갈 공공기관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