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어 중국도 '파격 감세'
'트럼프 감세'에 신속 대응한 시진핑 정부
미국 법인세 인하에…중국 외국기업 원천징수세 면제
기업 부담 줄여줘 투자 촉진하고 외자(外資) 이탈 막아
미국 감세안 파장 커지면 중국도 법인세 인하 나설 듯
[ 베이징=강동균 기자 ]
기업을 붙잡기 위한 주요 2개국(G2)의 ‘감세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 의회는 지난 20일 기업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마련한 세제개편안을 통과시켰다. 내년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이 35%에서 21%로 뚝 떨어진다.
중국은 29일 외국 기업 원천징수세 면제라는 새 감세카드로 대응했다. 현재 중국의 법인세율은 25%다. 이 중 10%를 영업이익에서 원천징수하고 나머지는 과표구간에 따라 부과한다. 이날 조치는 사실상의 법인세율 인하다. 미국 감세에 따른 파장을 봐가며 기업 부담을 줄이는 추가 방안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G2 사이에 ‘기업 모시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신속 대응하는 中 정부
미국 의회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파격적으로 낮추는 세제개편 법안이 통과된 직후 중국에선 기업 이탈과 자금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기업과 국책 연구기관들이 앞다퉈 정부에 대응책 마련을 요구했다.
재정부 산하 중국재정과학연구원은 “추가로 세율을 조정해 기업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국 공산당 고위간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중앙당교의 국제전략연구소는 미국의 세제 개편은 중국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공평한 경쟁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기업 세금을 점진적으로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 부가가치세를 인하하고 중소기업을 위한 세제혜택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 내 미국 기업의 유보이익이 대거 미국으로 이전되면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철수까지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들도 세금을 인하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주광야오 중국 재정부 차관은 “미국의 감세가 중국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G20 국가와 손잡고 미국의 감세정책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선진국도 감세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중국에 재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원천징수세를 전액 면제해주는 조치를 우선 내놨다. 미국의 법인세율 인하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중국 내 기업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재정부는 “장기적으로 외국 기업의 중국 내 투자를 독려하고 상호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법인세율 추가 인하할까
중국 정부는 5년 전부터 꾸준히 감세 기조를 유지해왔다. 감세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올해 더욱 강력한 감세정책을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다.
이후 4월 국무원이 증치세(부가가치세)와 기업 소득세(법인세), 창업투자 등 분야에서 6개 항목의 감세 조치를 발표했다. 우선 영세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법인세율 인하 범위를 확대하고,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과표 상한도 30만위안(약 5000만원)에서 50만위안으로 상향 조정했다.
부가가치세 과세 구간은 기존 17%, 13%, 11%, 6%인 네 개 구간에서 13%를 없앴다. 농산품과 천연가스 등에 부과하는 부가가치세도 13%에서 11%로 낮췄다. 과학기술형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한 추가 공제 비율도 50%에서 70%까지 높였다. 5개 사회보험과 관련해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줄여줬다. 중앙정부에서 기업에 부과하는 각종 행정사업성 비용 항목의 절반을 없애고 나머지 항목의 비용도 축소했다.
중국 정부는 영업세를 부가가치세로 바꾸는 정책을 통해 올해 기업에 이뤄진 감세 규모가 총 1조위안에 이른다고 밝혔다. 1400여 건의 정부기금과 행정사업 비용 징수 인하 등으로 기업 부담을 덜어준 액수는 3700억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5년 동안 시행한 감세로 지금까지 기업이 받은 감세 혜택은 2조위안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앙경제정책회의에서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내년에도 감세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나가기로 했다. R&D 비용의 공제 비율을 상향 조정하고 첨단기술 산업에 세제우대 혜택을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중서부와 동북 3성 등 중국 내 낙후지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의 법인세율 인하 혜택도 늘릴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감세 파장이 커지면 결국 중국 정부도 법인세율 추가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중국 정부가 법인세율을 조정하지 않을 경우 자본 유출 등으로 2020년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0.74% 줄어들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