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류 외국인 200만 시대… 말 안통하는 경찰서

입력 2017-12-27 18:46
수정 2017-12-28 07:35
'성추행' 콜롬비아 여성, 통역 없어 신고 포기
자동차 사고 프랑스인, 4명이 순차 통역

통역 안돼 '사건 없던 일' 다반사
외국인 범죄 4년 만에 78% 급증
서울은 통역요원 되레 줄어들어

"다양한 언어 통역요원 확보" 시급
중국·동남아인 범죄 늘지만
태국어·베트남어 통역 극소수


[ 황정환/장현주 기자 ] 콜롬비아에서 온 다이애나 씨(22)는 얼마 전 서울 홍익대 인근 클럽에서 성추행을 당해 근처 경찰서를 찾았다. 가해자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스페인어를 쓰는 그는 서툰 영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당직 경찰관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경찰은 민간 통역사를 불러주겠다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리던 다이애나 씨는 결국 신고를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작년 외국인 범죄 4만1000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지난해 200만 명을 넘어서면서 피의자나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는 외국인이 급증세다. 하지만 이들에게 경찰서는 여전히 낯설고 불편한 공간이다. 통역 요원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다이애나 씨처럼 말이 안 통해 사건 자체가 ‘없던 일’이 되기도 한다.

프랑스인 젠틸 씨도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한 르완다 친구 B씨와 인근 경찰서를 찾았지만 심야 시간에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봉사요원을 못 찾아 고초를 겪었다. 그나마 영어를 좀 아는 경찰관을 불러다 놓고 B씨와 젠틸 씨, 통역관, 담당 수사관까지 4명이 프랑스어→영어→한국어로 순차 통역을 하는 진풍경을 빚기도 했다.

경찰엔 전국적으로 800여 명의 통역요원이 있다. 이 때문에 경찰은 민간통역봉사단체 등과 계약을 맺어 전담 요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챙긴다. 경찰이 올해에만 민간요원을 600여 명 늘려 총 3945명의 통역요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외국인 인구가 우리나라 인구의 5%를 차지하는 것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지역은 외국인 밀집 장소임에도 오히려 인력이 줄었다. 외국인 인구가 약 50만 명에 달하는 서울에서의 외국인 범죄는 2013년 8145건에서 지난해 1만1607건으로 약 42% 증가했다. 그럼에도 서울의 통역요원은 2012년 873명(경찰관 317명, 민간인 556명)에서 2016년 724명(경찰관 285명, 민간인 439명)으로 줄었다. 경찰 관계자는 “2014년 통역요원에 대한 전화 언어 테스트 결과 일시적으로 숫자가 줄었다”며 “점진적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역요원 1명인 언어도

경찰 통역요원이 특정 언어에만 몰려 있다 보니 외국인 범죄자들의 국적이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적별 외국인 범죄자 수는 중국 태국 베트남 등 순이지만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통역요원 285명 가운데 태국어를 구사하는 경찰요원은 단 1명에 불과했다. 베트남어가 가능한 요원도 5명에 그쳤다.

서울 시내 한 지구대 경찰관은 “민간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고는 있지만 심야나 새벽시간에 범죄가 발생하면 연결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러시아어 통역을 찾지 못해 러시아 사람이 자주 찾는 술집에서 통역을 부탁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이 국내에서 저지르는 범죄는 급증하고 있다. 2012년 2만3000건이던 외국인 범죄는 2016년 4만1000건으로 4년 만에 78% 늘었다. 외국인이 국내에서 범죄 피해를 당한 사례는 제대로 집계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를 포함하면 한 해 10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경찰서를 찾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통역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영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역은 외국인이 형사사법절차에서 느끼는 제1의 어려움”이라며 “외국어가 가능한 민간 풀을 확충하거나 대상 언어의 다양성을 높이는 등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황정환/장현주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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