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은 '경제의 봄'을 기다린다

입력 2017-12-26 17:44
"과도한 개입·규제로 서민경제 '쌀쌀'
시장의 자유·경쟁 상처 입히는 대신
겸허한 마음으로 시장 활성화 도와야"

이인제 < 한국유엔봉사단 총재·전 국회의원 >


겨울이 깊어갈수록 봄은 가까이 온다. 자연의 순환은 이렇게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경제의 순환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세계경제가 불황의 늪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웃 일본은 장기침체의 터널을 벗어나 청년의 일자리가 넘쳐난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우리 경제는 어떨까. 세계경제 회복에 힘입어 일부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오랫동안 2만달러대에 머물던 국민소득이 곧 3만달러대로 진입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청년실업은 역대 최악을 기록하고 서민경제에는 찬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바다가 생명의 원천이듯 경제의 원천은 시장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원리는 자유와 경쟁이다. 그러나 시장은 완전무결한 공간이 아니다. 경쟁의 결과는 언제나 정의롭지도 않고 자유는 꼭 도덕적 긴장이 수반되는 것도 아니다. 이 시장의 실패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산업사회를 관통하는 정치노선의 요체라고 말할 수 있다. 볼셰비키나 마오이스트들은 아예 시장을 부정하고 정부가 시장을 대신하려 했으나 처절하게 파국을 맞았다. 극단적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시장에 개입하려는 여러 형태의 좌파노선들이 있다. 그러나 좌파노선의 경제정책이 경제의 봄을 열었다는 경험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개입이 경제를 파탄시킨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우리는 이 역사의 경험에서 배우는 게 있어야 한다. 정부는 시장에 새로운 틀을 만들고 보완과 보호에 힘을 쏟아야 하지만 시장의 자유와 경쟁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반드시 반격을 하게 된다. 시장 또한 마찬가지다. 시장의 강자를 억눌러 시장의 약자를 보호한다는 생각은 자칫 환상에 불과할 때가 많다. 개입이 지나친 순간 상처를 받는 것은 시장이지 강자가 아니다. 시장의 반격은 약자를 더 위험에 빠뜨리고 강자에는 더 큰 기회를 가져다준다. 개입과 규제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여러 상징적인 조치들이 충격적으로 시행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 탈(脫)원전정책의 급격한 추진, 복지의 확대, 법인세율 인상 등이 그것이다. 정책입안자들의 주관적 의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런 조치들이 시장의 경제주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가 중요하다.

이미 곳곳에서 시장의 반격이 감지된다. 고용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영세, 중소기업들이 오히려 고용을 줄인다. 에너지시장의 주류인 원전생태계가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의료시장의 공급자인 의사들이 거리로 나온다. 가뜩이나 경쟁력 약화로 고전하는 기업들에 법인세 인상은 절망적인 신호일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재원을 연구개발이나 혁신에 투입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텐데 법인세율 인상은 결과적으로 경쟁력을 더 약화시킬 것이다. 그래서 해외로 나간 기업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기업들도 해외 이전을 꾀한다.

이런 추세라면 경제의 봄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질 것이다. 국민의 기대가 불안과 불만으로 전환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생명을 품고 키우는 평온한 바다가 거칠게 변하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를 두려워한다. 시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같을 것이다. 바다의 태풍을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시장의 분노를 이길 수 있는 정부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겸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 정부가 시장을 대신할 길은 없다. 시장을 활성화해 일자리가 만들어지게 하고 부의 원천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봄이 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만물이 성장을 시작하는 것처럼 훈풍이 불면 경제주체들이 알아서 행동을 개시하는 곳이 시장이다. 이미 오랫동안 불황에 시달려온 국민은 경제의 봄을 기다린다. 이 정부는 국민의 이 열망을 받들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인제 < 한국유엔봉사단 총재·전 국회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