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력 담보 없는 구호성 계획 불과
설비수요도 공약 이행 위한 짜맞추기
전력 계획은 늘 보수적으로 짜야"
정범진 <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 >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4일 제8차 전력수급계획 초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전력수급계획은 2년마다 수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래는 2016년에 나왔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이 예상보다 빨리 바뀌었고 신정부의 정책을 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앞으로 공청회와 전력심의회라는 단계가 남아있지만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전력수급계획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궤를 같이한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정책을 이행하는 계획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두 가지가 이상하다. 하나는 공약이 정책화되는 과정에서 조금은 바뀌는 것이 정상인데 바뀐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 집단과 공무원의 정책화 과정이 정상적이었는지를 의심하게 하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 제시한 목표에 대한 이행계획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전력수급계획은 목표가 무엇인지를 선언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실행력이 담보되지 않았다.
전력수급계획은 실행력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계획이었다. 전력수급계획은 공기업이 수립한 발전소 건설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간발전사업자로 문호를 개방하면서 전력수급계획에 들어있는 발전소이더라도 수지가 맞지 않으면 건설이 미뤄지는 사례가 발생한다. 또 지역의 민원 등으로 인해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이 지연되는 사례도 나온다. 따라서 이제는 실행력에 대해 이전보다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 계획이라면 구체성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 실행을 담보할 수치가 제시되지 않았다. 원전이 줄어들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증가하는데 어떻게 미세먼지가 감소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하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2030년까지 미세먼지를 62% 감축하고 온실가스 배출도 26% 줄일 것이라고 목표만 제시돼 있을 뿐이다. 원전이 줄어든 만큼 재생에너지가 늘어나서 대체하기 때문이라는 낙관적 기대만이 반영돼 있다. 이것은 기대일 뿐 계획이 아니다.
전기 1킬로와트시(kWh) 생산 단가가 50~70원 수준인 원자력과 석탄발전을 빼고 150원이 넘는 LNG와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데 전력가격이 어떻게 인상되지 않을 수 있는지 ‘수치’를 제시하기보다는 인상시키지 않을 거라는 ‘각오’만 제시됐다. 분산전원이 늘어나고 간헐적인 전력생산을 하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면 전력계통의 보강이 필요하다. 계통 보강을 하겠다면서도 2030년에도 요금 인상요인은 크지 않을 거라는 전망뿐이다. 햇빛과 바람이 없어 재생에너지가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전력공급을 하려면 예비발전소를 지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가격의 인상은 없다는 전망만 제시됐다. 재생에너지 47기가와트(GW)를 확충하려면 넓은 부지가 필요한데 이 역시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목표만 제시됐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그만큼 늘게 되는 보조금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전력설비수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성장률은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발표를 인용해 2.4%로 잡았다. 그러나 이는 최근 수년간 세계경제의 침체 결과이고 이미 세계경제는 활성화되고 있다. 며칠 전 아시아개발은행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3%로 상향조정한 바 있다. 4차 산업혁명, 전기자동차와 인덕션 레인지의 보급,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효과 등도 반영하지 않았거나 미미하게 반영했다. 누가 보더라도 공약 이행을 위한 짜맞추기 계획으로 보인다.
전력설비를 과도하게 건설했을 때의 사회적 손실과 적게 건설했을 때의 사회적 손실을 비교해 봐야 한다. 과도하게 건설했을 때는 결국 언젠가는 지어야 할 설비를 미리 지은 것이기 때문에 건설비의 몇 년 치 이자에 해당하는 사회적 손실이 있다. 그러나 적게 건설했을 땐 정전이 발생하면 사회가 감당해야 할 손실이 훨씬 크다. 전력수급계획은 항상 보수적으로 수립해야 하는 이유다.
정범진 <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