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남미 진출 도울 '스페인 워킹홀리데이 '

입력 2017-12-22 18:06
"연 1000명 스페인서 일하며 말 배워
중남미 시장 확대 기회 더 넓힐 것"

박희권 < 주 스페인 대사 >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한국인이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필자는 스페인 한국 대사관을 찾은 방문단에게 이 질문을 하며 한·스페인 관계를 설명한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 없는 일이지만 한국인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면 오늘날 우리의 정치, 경제, 문화 활동 반경은 훨씬 확대되지 않았을까.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은 위와 같은 달콤한 상상과는 거리가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4대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조건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더 넓은 시야를 갖고 더 큰 세계로 진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능한 한 젊은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와 환경을 자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워킹홀리데이 협정이란 이를 언어·문화적으로 도와주는 제도다.

한·스페인 워킹홀리데이 협정이 수년간의 협상 끝에 지난 18일 서명됐다. 우리나라로서는 22번째 워킹홀리데이 협정 체결이며 스페인어 사용국 중에서는 칠레 다음이다. 이로써 내년 2월께부터 매년 1000명의 우리 청년들이 스페인에서 일을 하면서 말도 배울 수 있게 됐다.

스페인과의 워킹홀리데이 협정 체결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우선, 국제무대에서 스페인어의 중요성이 갈수록 점증하고 있다. 전 세계 22개국, 5억 명의 인구가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모국어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하면 중국어에 이어 2위, 학습자 수를 기준으로 하면 영어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배우기 쉬운 언어이기도 하다. 듣고 말하고 쓰는 것이 동일하며 발음이 분명하다. 언어학자들은 금세기 동안 스페인어의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내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약 5000만 명의 스페인어 사용자가 살고 있는데 이는 스페인 전체 인구보다도 많은 숫자다. 미국 내 히스패닉 커뮤니티는 전체 인구의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2050년에는 30%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미국 내 ‘라틴’이라는 독특한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높은 시장 점유율을 장악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스페인 정부는 내년에 세르반테스문화원을 서울에 최우선적으로 개원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세르반테스문화원은 스페인어 교육과 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스페인 정부가 설립한 공공기관이다. 이번 워킹홀리데이 협정 서명은 세르반테스 서울문화원 개원과 함께 우리나라 내에서 ‘스페인어 학습 붐 조성’에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정책의 최우선인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다. 스페인에서 어학을 배우고 경험을 쌓는 것은 아직까지 기회의 땅으로 남아있는 중남미 진출을 위한 사전 훈련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오늘날까지 중남미 국가들에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중남미지역 건설수주에서 수년째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번 한·스페인 워킹홀리데이 협정 체결은 상기 법적·제도적 협력의 틀을 언어적 문화적 측면에서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스페인과 중남미를 비롯해 세계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이 되기를 희망한다.

박희권 < 주 스페인 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