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언론·스마트폰 업체들 '담합 조사설' 흘리며 압력
내년 가격인상 통보에 불만
"한국 반도체 업체는 투기세력"… 중국 언론, 삼성·SK에 감정 섞인 비난
가격협상력 약한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
자국 언론 통해 한국에 대한 불만 표출
"중국 정부, 담합 조사 나서야" 주문도
삼성 "공식 조사나 공문 받은 것 없다"
[ 노경목/베이징=강동균 기자 ] “올려도 너무 올린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와 언론들이 한국 메모리 반도체업계에 대해 공세를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D램 가격에 대한 불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대상으로 중국 정부가 담합 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온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영향으로 올해 내내 한국 기업에 대한 부정적 보도를 내보내던 현지 언론들이 반도체까지 정조준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1세기경제보 등 중국 주요 언론은 22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중국 스마트폰업체들의 불만을 받아들여 삼성전자 관계자를 소환해 D램 가격 상승에 대한 조사를 했다고 보도했다. 또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21일 “D램 가격이 1993년 시장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폭의 상승세를 보이면서 중국 업체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전자전문매체인 전자공정세계 등도 17일부터 “국가발전개혁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을 대상으로 담합 혐의가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국가발전개혁위는 경제운용계획과 가격 관련 담합을 조사하는 정부 조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와 관련, “해당 사안과 관련해 공식적인 조사나 공문을 받은 것이 없다”고 동시에 밝혔다. 하지만 중국 매체들이 반도체 가격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양사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와 언론을 움직여 한국 반도체회사를 우회적으로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서 중국 스마트폰업체들은 세계 모바일용 메모리 반도체의 50~60%를 소비하고 있다. 모바일용 D램은 전체 D램 시장의 30%가량을 차지한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가격(DDR 4기가비트 기준)은 지난해 6월 말(1.31달러)부터 오르기 시작해 지난달 말엔 3.59달러로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
중국 매체들이 D램 가격을 문제삼고 나선 것은 지난주부터다. 삼성전자 등 D램 제조업체들이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에 내년 1분기에도 모바일용 D램 가격을 3~5% 올리겠다고 통보하면서다. 중국의 경제 관련 매체인 전자공정세계는 “작년 3분기부터 여섯 분기 연속 상승한 D램 가격이 내년 1분기에도 오른다는 소식에 중국 모바일 제조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초조한 ‘반도체 굴기’
더욱이 중국 휴대폰 시장은 지난 10월부터 하향세에 들어섰다. 화웨이와 오포, 비보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는 생산량을 전년 동기 대비 10%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수요의 지속적 증가로 D램 가격이 계속 오르자 집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매체는 감정적인 반응도 쏟아내고 있다. 정보기술(IT) 전문지인 콰이커즈 등은 한국 반도체 업체들을 투기세력에 비유하기도 했다. “1년에 두 배 이상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 말이 되느냐.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메모리반도체가 가장 좋은 재테크 수단이 되고 있다”는 등의 보도를 내보냈다. 또 익명을 요구한 스마트폰 제조업체 관계자는 광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곱 분기 연속 상승은 말이 안 된다”며 “D램 가격은 반드시 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부분의 현지 휴대폰 업체들은 반도체업계의 담합을 마치 사실인 양 자국 언론에 흘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중국 정부도 자국 업체들과 이심전심으로 ‘언론 플레이’를 활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은 메모리반도체의 최대 소비국임에도 가격 협상에서는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중국 산업계에 누적되고 있다”(21세기경제보)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면 원칙적 차원에서 조사를 검토해볼 수 있다는 방침을 흘리는 식이다.
지난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 정부는 메모리반도체산업 육성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성과를 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창장메모리 등 중국 업체들은 내년 말부터 D램과 낸드플래시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성능이 크게 낮은 수준이다. D램의 경우 2기가비트(Gb)로 4Gb 이상만 제조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은 생산하고 있지 않은 제품이다. 2Gb D램을 사용하면 스마트폰의 성능 저하와 두께 증가 등의 문제가 생겨 중국 정부도 “국산 메모리 반도체를 쓰라”고 강제할 수가 없다. 그나마도 수율이 나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사정에 밝은 국내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웨이퍼당 수백 개의 D램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창장반도체는 한두 개 건지는 수준”이라며 “삼성전자는커녕 대만의 난야 같은 중소 메모리업체를 따라잡는데도 최소 3년 정도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 칼 뽑기는 어려울듯
관건은 이 같은 중국업계의 불만이 당국의 가격 규제로 이어지느냐다. 국내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스스로 방침을 밝히기 전에 해외 기업이 해당 사실을 알릴 수는 없다”며 “삼성전자가 실제로 D램 가격 관련 통보를 받았을지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한국 기업을 향한 노골적 압박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세계적으로 메모리반도체가 품귀를 빚는 상황에서 물량 확보를 우선해야 할 중국 스마트폰업체들이 이른바 ‘갑질’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 점유율은 70%며, 사양이 높은 모바일 D램에서는 90%에 이른다.
■ '반도체 가격' 기사 쏟아내는 중국 언론들
중국 유력 민영 경제신문 21세기경제보가 12월22일자 신문 1면(왼쪽 첫 번째)과 17면(두 번째)에서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가격 인상에 반발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 17일엔 중국 포털사이트 시나닷컴(맨 오른쪽)에 중국 정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의 반도체 가격 담합 가능성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
노경목 기자/베이징=강동균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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