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물 여덟 김태리, 1987년 그 날의 광장에 서다

입력 2017-12-21 07:46
장준환 감독 신작 '1987' 연희 役 김태리 인터뷰
"억지스럽지 않은 영화…희망 엿보여"
"용감하지 않은 소시민 연희, 허구의 캐릭터라 생각치 않고 연기"



지난해 가장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꼽는다면 배우 김태리를 빼놓을 수 없다. 거장 박찬욱 감독 옆에서 바들바들 떨며 마이크를 잡는 그의 순수한 모습은 인생에서 한 번쯤은 겪어야 하는 신고식의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1년이 지났다. '우리 태리'가 달라졌다. '1987'을 겪어내는 동안 성장했다. 쏟아지는 질문에 조금은 느리더라도, 당차게 '날 것'의 대답이 여과 없이 돌아왔다. 김태리와 대화를 나누며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벌써'다. 영화 '1987'의 엔딩크레딧이 오르자 스쳐 지나가는 단어는 '역시'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김태리는 눈을 반짝이며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아 기자들을 맞이했다. 인터뷰 하기 전에 '정신 차려!'라면서 준비를 했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김태리의 필모그래피에 두 번째로 쓰여지게 된 영화 '1987'은 6.10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이한열 최루탄 사망 사건을 통해 관객들을 30년 전의 광장으로 데려다 놓는다. 영화에서 김태리는 유재하를 좋아하고 처음 하는 미팅에 설레며 '마이마이'에 목숨 거는 87학번 신입생 연희의 얼굴을 입었다.

"극 중엔 다양한 지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연희는 관객에게 던져주는 인물인 것 같아요. '자, 봐봐요. 이거 어때요? 당신 같지 않나요'라고 물어보듯 말이죠. 평범하게 세상을 살고 있는 조금은 용기가 없는, 때론 소심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연희는 교도관인 삼촌 한병용(유해진)의 부탁으로 남영동에서 사망한 대학생(박종철 열사)의 사건의 진상을 세상에 전달하는 매개체다. 대학 입학 후 동료 학생들이 시위하는 모습에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라며 자리를 피하지만 일찍 돌아가신 아빠와 다름 없는 삼촌이 대공수사처에 잡혀가자 막고 있던 귀를 열고 갈등에 빠진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에서 주요인물 중 유일하게 허구의 캐릭터로 두 사건을 잇는 교두보 역할이다.

"감정선이 복잡하고 드라마틱한 캐릭터에요. 실화로 전개되는 부분에서 '허, 참' 하는 소리가 나와요. 30년 전 그 시절을 공부하고 봤을 때 연희가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당시에 있었을 아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했죠."


김태리는 시나리오를 받기 전까지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이야기를 '대충' 알고 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현대사를 깊게 공부하지 않은 세대랄까요? 학창시절에 공부하던 것 말고 자라서 읽는 현대사는 색다르더라고요.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말은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책으로 그런 부분들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것들이 오래전부터 켜켜이 쌓여 온 것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화의 묵직함에 중압감도 있었다. 그의 데뷔작인 영화 '아가씨' 때 '나만 잘 하면 돼'라는 생각을 했다면 '1987'에선 사념을 버리고 연희의 감정에 조금 더 집중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김태리에게 연희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희는 처음에 용기 있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어요.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회를 위해 나서는데 왜 이렇게 숨으려고만 하는지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됐죠. 감독님은 '연희에게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생각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양심이 있는 아이고, 무엇이든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전사를 만들어가야 했죠."

장준환 감독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시나리오와 다르게 촬영한 부분이 있어요. 갇혀 있으면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라 그렇게 감독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어쨌든 여러가지 버전으로 촬영을 했는데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납득이 되더라고요. '아 역시 감독님'이라는 생각을 했고, 더 유연해져야겠다고 다짐했죠."

결국 연희는 군중과 하나가 된다. 관객은 연희의 눈으로 1987년의 그 날을 목도한다. 회색빛이었던 스크린이 생생한 푸른 빛으로 물들면서 형용할 수 없는 뭉클함이 솟아오른다.

"'1987'의 미덕은 실화를 풀어주고 '자 여기 감동적이지 않아요?', 영화가 끝나고는 '이걸 보고 배우세요'라는 식의 영화가 아닙니다. 연희가 광장에 가득 찬 시민들을 바라볼 때 '희망'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현세대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아서 저 자신도 예전보다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소포모어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첫 작품의 성공 후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은 흥행이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현상에서 나온 말이다. '1987'의 김태리에게 더 이상 '아가씨'의 숙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어떤 칭찬에도 호들갑스럽지 않고 담담하게 마지막을 정리했다. 한해를 되돌아보니 부족한 부분은 항상 있었지만, 그것을 말로 하진 않을거라고 했다. 재밌게 영화를 볼 관객들을 위해서란다.

"올해는 제 나이 스물 여덟이던 해였습니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게 살게 됐고, 독립을 했어요. '리틀 포레스트'까지 영화 두 편을 마쳤고, 올해가 가기 전에 선보이게 돼 연말이 기대가 많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내년은 드라마 촬영으로 바쁠 것 같아요. 스물 아홉살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지 궁금하네요.(웃음)"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변성현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