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구 기자 ]
2018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의 최대 변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절대평가다. 올해 첫 시행인 데다 예상보다 쉽게 출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수험생의 선택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는 게 입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영어 1등급 비율이 10%를 넘어 기존 상대평가의 2등급 기준(11%)에 육박했다. 고교 진학 담당 교사들마저 예상 밖이라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다.
영어발(發) ‘풍선 효과’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기존 주요 과목인 영어가 등급만 반영됨에 따라 수능 동점자가 늘었다. 탐구 변환표준점수가 대입 당락을 가르는 변수로 떠오른 것도 예년과 달라진 요소다. 대학들도 영어 절대평가에 대응해 정시 선발방식에 변화를 줬다. 그 어느 해보다 입시 전략이 복잡해졌다는 얘기다. 대체적으로 난도가 높긴 했지만 지난해 ‘불수능’보다 다소 쉬워진 점도 수험생들에겐 불안 요소다. 하향 안정 지원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도리어 하위권 학과의 커트라인이 올라갈 수 있다.
◆좁아진 정시 문… 선발인원 10만 명 밑으로
전국 194개 4년제 대학은 내년 1월6~9일 정시 원서를 접수한다. 포항 지진 여파에 따른 수능 연기로 전체 정시 일정도 한 주씩 순연됐다. 정시는 수능 위주 전형 비중이 87%로 압도적이다. 올해는 전체 모집인원의 26%인 9만772명을 정시로 뽑는다. 문이 한층 좁아졌다. 수시 확대와 맞물려 정시 비중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로 지난해보다 1만2373명(3.4%포인트) 줄어 10만 명 선이 무너졌다.
수시 합격자는 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정시 지원이 금지되며 대학별로 지원자의 수능 등급과 백분위, 표준점수를 전형요소로 활용해 평가한다. 수험생은 가·나·다 모집군별로 한 대학씩 지원해야 한다. 단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KAIST 등 과학기술특성화대, 육·해·공군사관학교, 경찰대,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산업대·전문대는 모집군에 관계없이 지원할 수 있다. 경희대 동국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한양대(이상 가·나군) 홍익대(나·다군) 건국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이상 가·나·다군) 등은 두 개 이상 모집군으로 분할해 모집한다.
◆대학별 수능영어 반영 방식 등 변수로 작용
정시 지원에서 수험생들이 고려할 요인은 대략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자신과 비슷한 점수대에 있는 수험생의 지원 성향을 파악해야 한다. 지원 희망 대학 및 모집단위의 기존 입시 결과도 분석 대상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입시 변화가 자신에게 불리한지, 유리한지 따져봐야 한다. 올해는 특히 입시 제도 변화가 당락을 가를 가능성이 높다. 대학별로 절대평가 영어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영어를 제외한 다른 영역의 실질 반영 비중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등을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예컨대 서울대에 지원하는 수험생은 영어에서 1등급을 못 받아도 타격이 크지 않다. 영어 1등급과 2등급의 점수 격차를 0.5점만 뒀기 때문이다. 반면 연세대는 동일한 등급 간 점수 차가 5점으로 벌어진다. 상대적으로 서울대는 국어·수학·탐구 성적이 좋은 수험생의 합격 가능성이 올라간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3학년부장은 “절대평가인 데다 난도도 낮아 영어 1등급을 못 받은 학생은 연세대처럼 등급 간 격차를 둔 대학에는 지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절대평가 영어는 변수의 출발점이 됐다. ‘점수’가 반영되는 주요 과목이 기존 국·영·수에서 영어를 제외한 2개 과목으로 줄어든 게 컸다. 상위권 대학 지원자마저 동점자가 속출하는 상황이 예상된다. 이 같은 변화 탓에 대학별로 각각 변환표준점수로 평가하는 사회·과학탐구의 영향력이 상당히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종우 양재고 진로진학부장은 “영어가 쉽고 국어나 수학도 지난해에 비해 어렵지 않아 탐구의 변환표준점수가 변수가 될 것”이라며 “탐구 선택과목 중 무엇을 택했는지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하향 지원 추세에 학과 커트라인 요동칠 듯
입시 전략이 복잡해졌다는 것은 곧 하향 지원자가 증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무작정 안정 지원을 택했다가 도리어 탈락의 고배를 들 수 있다는 점이다. 불안한 마음에 다 같이 하향 지원을 하다 보면 기존 상위권 학과보다 커트라인이 올라가는 ‘역전 현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입시전문가들은 “아예 목표 대학을 한 단계 낮추면 모를까 희망 대학의 하위권 학과를 지원하다간 자칫 발목을 잡힐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세 번의 정시 지원 기회를 상향·적정·하향 지원으로 고르게 분산하는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나민구 한국외국어대 입학처장은 “입학 후 정시 합격생의 중도 탈락률이 높은 편”이라며 “합격에만 초점을 맞춘 무리한 하향 지원보다는 이후의 대학생활까지 염두에 두고 소신 지원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시지원 유의사항
“올해 수능은 변수가 많은 만큼 수험생은 자신의 성적대 도수분포까지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동점자가 몰려 있는 구간이라면 대학별 가중치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수능 국어·수학·탐구 표준점수 합산 기준 300점대 중반의 수험생 A와 B 사례를 보자. 표준점수 총점은 똑같지만 가중치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40점까지 차이 나기도 한다. 영어가 등급으로 바뀌면서 과목당 부여되는 가중치 비중도 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유불리를 판단할 수 있는 정확한 시뮬레이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변별력이 떨어지고 상위권과 중위권 간 점수 차가 줄어 정시 합격 가능성 판단이 어려워졌다. 영역별 반영비율과 특정 영역 가중치 적용에 따라 자신이 유리한 대학을 찾는 게 최우선이다. 영어 절대평가로 수시에서 정시로 이월되는 인원이 줄겠지만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높은 일부 대학은 이월 인원을 잘 확인해야 한다. 원서접수 최종일 마감시간 직전 발표되는 경쟁률을 지난해와 비교하면 도움이 된다. 특히 고려대와 서강대는 다른 대학에 비해 인문계 지원율이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영어 절대평가에 따라 동점자 수가 늘어나면서 대학별로 다르게 반영하는 탐구 변환표준점수가 중요해졌다. 수험생은 자신의 탐구 변환표준점수 성적이 어느 대학에 지원했을 때 유리한지 확인해야 한다. 성적 반영방식 변화로 비슷한 수준의 대학에 지원할 때도 유불리가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탐구 변환표준점수 성적이 잘 나온 수험생은 고려대, 제2외국어/한문 성적이 좋은 수험생은 연세대에 지원하는 게 유리하다. 어느 학교 및 학과에 지원자가 몰릴지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에다 쉽게 나오면서 영어는 무조건 1등급을 맞아야 상위권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총점 기준 평가에서 수학 주관식 한 문제면 만회할 수 있는 수준이니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백분위를 반영해 평가하는 대학은 ‘가산점’ 위력이 크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주요 대학 가운데 고려대 서강대 국민대 등은 탐구를 제2외국어로 대체할 수 없도록 바뀌었다. 수험생들은 이런 변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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