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성진 테라젠이텍스 부회장
유전체 빅데이터 모으면
임상시험 더 정교해지고
맞춤형 항암제 등 개발 가능
美·中 등 무제한 데이터 수집
한국, 유전자 검사 12가지로 제한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 우려
[ 임락근 기자 ]
“암 환자 1000명의 유전체를 해독해보면 모두 다른데 똑같은 항암제를 처방한다고 효과가 같을까요?”
경기 수원시 광교에 있는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에서 최근 만난 김성진 테라젠이텍스 부회장의 첫마디다. 그는 “암세포는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며 “어떤 돌연변이가 암세포를 만들었는지 모르고는 근본적인 암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게 치료하려면 유전체 분석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김 부회장은 세계적인 암 전문가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1994년 세계 최초로 암세포 생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TGF-베타 수용체 유전자의 결손과 돌연변이를 규명해냈다. 그가 밝혀낸 기전에 기반해 개발된 항암제가 한둘이 아니다. 강원대 농화학과를 나와 일본 쓰쿠바대에서 응용생화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87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박사후과정을 시작한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1994년 종신 연구원직을 받고 2007년 가천대 의과대학에 합류하기 전까지 줄곧 근무했다.
김 부회장은 2009년 한국인 최초로 자신의 유전체 전체를 해독했다. 미국에서 인류 최초로 유전체 해독에 성공한 지 5년 만이자 세계에서 다섯 번째였다. 김 부회장은 “암을 정복하기 위해 20년 넘게 단백질을 연구했다”며 “단백질보다 더 작은 단위인 유전자를 알아야 원인을 알고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해 한국형 게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가천대 의대 이길여암당뇨연구원 원장을 지낸 김 부회장은 2009년 테라젠이텍스에 합류했다. 유전체 분석을 더 전문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합류하면서 세운 바이오연구소는 현재 100여 명의 유전체 분석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다.
그는 “세계 다국적 제약사들은 해독한 유전체 정보를 모으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 했다. 유전체 빅데이터를 모으면 약물 효과나 부작용과 관련한 유전체 분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약물을 처방했을 때 효과가 기대되는 환자들만 모으고 부작용 가능성이 있는 환자는 제외하는 등 임상시험을 더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게 된다.
김 부회장은 국내에서는 유전체 분석 빅데이터를 모으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이 유전체 분석 회사에 의뢰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DTC)는 체질량 지수, 카페인 대사, 혈압, 혈당, 피부 노화, 색소침착, 모발 굵기 등 12가지로 제한돼 있어서다. 반면 미국 중국 등에서는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김 부회장은 “미국 중국 등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유전체 분석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중국의 ‘유전체 굴기’를 경계했다. 김 부회장은 “중국 정부는 고가의 유전체 분석 장비 매입을 적극 지원하고 유전체 분석 기업을 설립하는 등 유전체 빅데이터를 모으는 데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며 “기술이 한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따라왔다”고 했다. 그는 “같은 조건에서도 규모의 차이 때문에 경쟁하기 쉽지 않은데 한국은 유전자 검사 항목을 제한해 족쇄까지 채워놨다”며 “정밀 의료, 맞춤형 의료를 위해서는 유전체 검사 규제를 적어도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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