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건강과 노화를 조화시키려면

입력 2017-12-18 18:00
기대수명 연장되며 '건강한 노화'에 관심
충분한 재활의학 서비스로 치료비용 절감
활발한 신체활동과 사회 참여 유도해야

방문석 < 서울의대 교수·재활의학 >


2000년 인구의 7%가 65세 이상인 고령화 사회로 들어간 한국은 2017년 인구의 14%가 65세 이상인 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이는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진입하기까지 115년이 걸린 프랑스, 73년이 걸린 미국, 24년이 걸린 일본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다. 이미 고령인구의 노동, 고용, 연금, 정년 연장 등 다양한 사회 경제적 문제점이 지적돼왔다. 보건의료 측면에서도 고령화와 수반된 건강문제, 의료비용 증가 역시 늦었지만 대처해야 할 문제점들이다.

고령사회를 단순한 수명 연장으로 보기보다 또 다른 측면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그 기준 중 하나로 노화와 관련된 장애를 보정한 여명을 제시한다. 나이가 들면 특정한 질병을 갖게 될 확률이 높아지지만 의학의 발달은 발병 이후 수명을 계속 연장해줬다. 그러나 수명이 연장되더라도 장애가 수반된 삶과 건강한 삶은 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를 비율로 보정한 것이 ‘장애를 반영한 여명’이다. 수명 연장도 양적인 연장이 아니라 되도록 장애가 없는 질적인 건강한 수명 연장이 개인과 개인이 속한 사회에 모두 중요한 것이다.

‘건강한 노화’ 역시 WHO가 제시한 큰 화두다. 건강과 노화를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인 능력도 필요하지만 외부 환경 역시 중요하다. 즉 노화가 원인이 됐든 질병이 원인이 됐든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인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주고 여러 제반 환경을 통해 활동을 증가시키고 사회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건강한 노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는 재활의학의 치료 과정과도 동일해 노화와 동반된 건강이상, 질병 등이 있을 때 반드시 재활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자료로 자주 인용하는 것이 국가별 인구당 재활전문 인력 비율이다. 고소득 사회고 건강한 고령화에 대비하는 국가일수록 인구당 재활의학 전문의,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의지보조기 기사 등의 비율이 높고, 저소득 국가며 건강한 고령사회의 준비가 안 된 나라일수록 그 비율이 낮다. 사회의 환경적 요인 역시 중요하다. 사회 곳곳의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환경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노년층의 사회 활동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고령사회는 이미 접어든 것이고, 이제는 우리가 얼마나 현명하게 사회시스템과 경제 환경을 여기에 맞춰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노년층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 인프라 구축과 사회 활동 참여를 위한 정책이 필요할 것이고, 활동 증진을 위한 보조기구산업 발전도 이뤄져야 한다. 건강보험에서 질병치료뿐만 아니라 질 좋은 보청기, 안경, 지팡이, 휠체어 등의 보조기구를 제공해 노인의 건강과 사회 참여를 증진해 질병 치료를 위한 비용을 절약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관련 산업 규모도 발전할 것이다.

노화와 질병으로 인해 신체 기능이 저하될 때는 충분한 재활치료 서비스를 통해 가정과 사회로 빨리 복귀하도록 해 불필요하게 병원에 오래 입원하는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재활전문 인력의 서비스 공급을 늘린다면 고소득 의료서비스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 건강보험도 약값, 의료장비, 재료 위주의 보험재정 지출에서 양질의 인건비 지출 형태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건강한 노년은 활발한 활동과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궁극적인 목표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질병 치료 위주에서 전문 인력 재활 서비스 확대로의 보건정책 변화와 다양한 보조기구산업 육성을 통해 장애를 지닌 여명보다 건강한 여명을 늘려야 한다. 늘어난 여명 동안의 활력 있는 삶을 위해서는 사회 환경 인프라 개선, 노인의 활동과 사회 참여를 위한 정책 수립 등 사회·경제·보건 정책을 포함한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방문석 < 서울의대 교수·재활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