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의 데스크 시각] 지금 비트코인 사겠다는 후배에게

입력 2017-12-17 17:13
박준동 금융부장 jdpower@hankyung.com


“선배님, 지금 비트코인을 사도 될까요? 경제기자를 오래 했으니 얘기 좀 해 주세요.”

1주일 전쯤 대학 후배가 조언을 구해왔다. 후배는 40대 초반으로 한 대기업에서 차장으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에서 비트코인으로 10억원을 벌었다는 글을 봤어요. 지금처럼 직장생활해서 언제 돈 버나요.”

우선은 “경제나 투자는 나보다 더 잘 알 텐데 뭘 물어보나”라며 얼버무렸다. 다음으로 “얼마나 사 보려고?”라고 되물었다. “한 3000만원이나 5000만원 정도 해 보려고요.” “좀 많지 않을까. 그리고 늦은 것 같은데….”

계속 오를 것이란 기대는 환상

기자는 비트코인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다. 데이터를 분산 저장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나온 가상화폐(crypto currency)의 일종 정도로만 이해한다. 더군다나 가상화폐를 매매해 돈을 벌 수 있을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시간이 흘러서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가 현재의 화폐를 대체할지, 대체한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가격이 오를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이 뛰어들겠다고 하는 것을 보니 비트코인이 투기 자산이 됐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역사에 남은 대부분의 투기 광풍은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먼저 어떤 사람이 새로운 자산이나 사업에서 큰 돈을 번다. 일군의 무리가 이를 따라하는데 역시 적잖은 성공을 거둔다. 가격이 치솟자 대중이 뛰어든다. 이때 가격은 계속해서 오를 것이란 환상이 퍼진다. 하지만 거품은 일거에 터지고 알거지가 속출하며 국가 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가 대표적이다. 은행가 집안이던 푸거 가문이 튤립으로 재미를 봤다는 소문이 돌았다. 귀족과 돈 많은 상인들이 사재기에 나서 돈을 벌었다. 이후 직공 농민 채소장수 등 서민들이 뛰어들었다. 튤립 알뿌리 하나가 암스테르담의 집 한 채 값보다 비쌌지만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가 버블 붕괴 경고를 압도했다.

1920년대 미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라디오를 싸게 만드는 기술이 나오면서 라디오가 날개돋친 듯 팔렸다. 라디오를 만들던 RCA의 수익은 1925년 250만달러에서 1928년 2000만달러로 늘었다. 주가는 같은 기간 50배 이상 뛰었다. 자동차 항공기 등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겼다. ‘자본주의가 새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었고, 어빙 피셔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조차 1929년 “주가 상승이 장기 지속 가능한 고원지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내놓을 정도였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던 것은 대공황이었다.

손실 보지 않는 게 버핏 투자 원칙

투기와 투자는 종이 한 장 차이다. 하지만 그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엄청나다. 투기를 잘못 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현대적 투자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벤저민 그레이엄은 “투자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원본을 지켜낼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을 필요로 한다. 즉흥적 결정은 미래 수익을 꼼꼼히 따져보는 투자보다 투기적”이라고 했다. 그레이엄의 제자인 워런 버핏은 두 가지를 평생 투자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첫째 원금을 절대 잃지 말 것. 둘째는 첫째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

곧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하려 한다. “벤저민 그레이엄이나 워런 버핏 책을 사서 읽어봐라. 만약 그래도 비트코인을 못 사서 후회가 남을 것 같으면 한 10만원어치 사보면 어떨까. 퇴근길 동료들에게 맥주 한 잔 더 사는 셈 치고.”

박준동 금융부장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