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격식·택일·내용 모두 납득하기 어려운 한·중 정상회담

입력 2017-12-14 18:03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어제 정상회담을 했다. 다자(多者) 국제회의 도중에 열린 이전의 두 차례 회담과 달리 이번에는 한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 회담이었다. 그만큼 형식과 내용 모두 양국의 큰 관심사였다.

두 정상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4대 원칙에 합의했다. △한반도에서 전쟁 절대 불용 △한반도 비핵화 원칙 견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한 비핵화 △남북한 관계 개선 등이다. 양국이 북핵 해결 원칙을 천명한 것이지만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만약에 있을지 모를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이나 전술핵 한국 배치 등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사드 문제에 대한 시각차도 여전히 좁히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어려움은 역지사지(易地思之) 기회가 됐다”고 했으나, 시 주석은 “지금 모두가 아는 이유로 중·한 관계는 후퇴를 경험했다”며 한국 책임을 거론했다.

시 주석은 또 “사드 문제는 한국이 적절히 처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 동맹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이른바 ‘3불(不)’을 한국이 제대로 지키라고 대놓고 압박한 것이다.

이번 회담은 내용뿐만 아니라 격식, 택일(擇日) 등에서도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무엇보다 ‘국빈’으로 초청해 놓고 보여준 중국의 태도는 무례를 넘어 한국으로선 모욕으로 느껴질 정도다. 통상 장관급이 나오는 공항 영접을 차관보급이 맡은 것부터 그렇다. 낮아진 격도 문제지만 ‘사드 담당자’를 보낸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문 대통령 베이징 도착 당일 시 주석을 비롯한 국가 주요 지도자가 난징학살 80주년 추모식 참석을 이유로 베이징을 비운 것도 결례다.

방중 나흘간 문 대통령과 중국 고위 인사의 식사는 시 주석과의 만찬, 충칭시 당서기와의 오찬뿐이다. 이름만 국빈 방문일 뿐 옛 조공국가 대하듯 하대하겠다는 식이다. 이런 ‘중화 패권주의’는 양국 관계 발전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리더 국가로 성장하는 데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한국 기자가 중국 측 경호요원들에게 집단 폭행당해 중상을 입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겹쳤다. 정상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공동성명도 기자회견도 없는 회담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뒷말 많은 국빈 방문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연내 방중이나 시 주석의 평창올림픽 초청에 집착하면서 치밀한 외교전을 펼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패권주의 중국’의 본모습을 냉철히 보고 그 바탕에서 외교안보 전략을 짜야 한다. 중국이 사드 문제에 집요하게 매달릴수록 가공할 북한 핵이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거듭 설득해야 한다. 물러설 수 없는 논리요, 명확한 사유다. 북핵 위기가 언젠가 풀린다 해도 중국의 패권적 행태는 심해질 수 있다. 우리 외교안보가 극복해야 할 큰 시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