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형주 기자 ]
“매월 각 가정에서 가계부에 소득과 지출 등 정보를 직접 기입하는 가계동향조사는 지금과 같은 ‘빅데이터 시대’엔 맞지 않습니다.”
통계 왜곡을 이유로 내년부터 없애기로 한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정부와 여당이 부활시키기로 한 데 대해 전직 통계청 고위 관계자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시계열을 이어가기 위해선 내년에도 분기 가계동향 조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단박에 일축한 것이다.
가계동향이 소득통계로서의 신뢰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관련 학계에선 오래된 정설이다. 2010년대 들어선 국세청 자료 등 빅데이터를 활용한 가계금융·복지조사(가금복)로 바꾸기로 일찌감치 중지가 모아졌다.
하지만 지난 박근혜 정부는 이번 정부와 마찬가지로 가계동향 폐지를 주저했다. ‘임기 내 중산층 70%’라는 국정공약 달성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작업에 참여한 관계자는 “가금복으로 바꿀 경우 중산층 비중이 10%가량 낮아지는 것으로 나와 정권 핵심의 반대가 컸다”며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정권의 관심이 멀어지고 나서야 가계동향 중단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소득주도 성장 뒷받침을 위해 분기별 가계소득 통계가 필요하다는 여권 일부의 시각은 통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소득주도 성장에서의 ‘소득’은 한국은행이 매년 집계하는 국민계정상 소득지표, 즉 거시자료에 해당한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 역시 2014년에 쓴 ‘한국의 기능적 소득분배와 경제성장’ 등 논문에서 국민계정을 활용해 노동소득분배율 시계열을 분석했다. 9000여 표본가구만을 조사해 얻어진 미시자료(가계동향)로는 국가 전체의 소득배분 상황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 안팎에선 “문재인 정부가 부실한 통계조사를 입맛에 따라 되살리는 등 이전 정부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제라도 가계동향 조사 부활을 철회하고 통계의 중립성을 보장하는 등 ‘통계 적폐’를 끊어내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고언을 새겨봄 직하다.
오형주 경제부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