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책은 타이밍"이라는데, 굼뜬 조치 너무 많다

입력 2017-12-10 17:05
한시가 급한 구조조정은 다시 안갯속으로
말로만 '혁신성장', 규제개혁 줄줄이 후퇴
세제·노동 등은 글로벌 흐름과 엇박자 질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기업 구조조정 추진방안을 내놨다. “박근혜 정부 때와는 다른 구조조정 방식으로 가겠다”지만,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기는커녕 원점으로 후퇴하는 양상이다.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아 퇴출 대상에 오른 조선사도 다시 외부 컨설팅을 받아 구조조정 방안을 재검토하기로 하는 등 내년 초에나 ‘조선업 혁신성장 방안’을 내놓겠다고 한 것이 그렇다.

조선업계는 “당장 숨넘어갈 판인데 구조조정 처방이 늦어지면서 수주도 안 된다”고 호소한다. 더구나 구조조정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문재인 정부는 지역 민심까지 반영하겠다고 한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정치적 구조조정이 성공한 예가 없다. 한시가 급한 구조조정이 짙은 안갯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모양새다.

성공적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일관성, 고통분담의 원칙과 함께 시간을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는 ‘한시성(신속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지금처럼 오락가락하는 구조조정은 그나마 정상경영이 가능한 기업까지 벼랑으로 몰고가 조선업 전체를 몰락시킬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의 굼뜬 조치는 조선업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 간 경계가 급속히 붕괴되고 신기술·신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전 산업이 ‘죽느냐, 사느냐’의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구조조정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 ‘혁신’이다. 구조조정 없이 혁신은 불가능하고,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조정은 무의미한 까닭이다.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도 말로만 강조하고 구체적 실행엔 꾸물거리고 있다. 혁신을 위한 규제개혁이 그렇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서둘러 살폈다면 청와대가 드론, 바이오헬스 등 신산업의 자유로운 실험과 도전을 허용하기 위한 ‘규제프리존법’에 제동을 거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여당이 직역·이익 단체에 포획돼 의료 등 서비스업의 개혁을 막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간다면 국내 서비스산업의 낮은 생산성이 전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게 생겼는데도 정부·여당 내 누구 하나 이견을 말하는 이가 없다.

벤처 민간단체들이 더는 못 기다리겠다며 규제철폐를 골자로 하는 ‘벤처발전 5개년 계획’을 내놓았지만 관련 부처에서는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김동연 부총리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만나 “대기업도 혁신성장의 중요 축”이라고 했지만 ‘립서비스’로 들리기는 마찬가지다. 벤처기업조차 인수·합병(M&A) 시장 활성화를 위해 빨리 철폐해달라고 호소하는 대기업 벤처투자 규제에 대해 정부가 묵묵부답인 것만 봐도 그렇다.

세제·노동 등에서는 세계 흐름과 타이밍을 맞추기는커녕 아예 엇박자를 내기로 작심한 듯한 것도 적지 않다. ‘미국발(發) 법인세 인하’ 태풍에 모든 나라가 바짝 긴장하며 대응 조치에 부심하는 판국에 한국만 거꾸로 가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선진국은 ‘노동개혁’이라는 결단을 통해 밖으로 나간 자국 기업을 불러들이느라 여념이 없는데 한국은 오히려 노동시장 경직성을 강화시켜 기업을 밖으로 내모는 것도 그렇다.

경제 흥망사를 파헤친 것으로 유명한 찰스 킨들버거는 한 나라의 운명이 ‘새로운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능력’에 달렸다고 말한 바 있다. 국가가 구조조정과 혁신, 그리고 세계 흐름 등에 적시에 대응하는 ‘변환능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시간을 허송하고 난 뒤에 후회하고 자책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