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실패' 전형 보여주는 탄소배출권 시장의 대혼란

입력 2017-12-08 17:48
탄소배출권 가격이 급등하면서 할당량을 못 맞춘 일부 업종 기업들의 무더기 적자가 우려된다고 한다. 이 중 일부는 아예 생산량마저 줄여야 할 형편이다. 12월8일자 한경 보도(A1, 4면)에 따르면 지난해 6월 t당 1만6000원 선이던 탄소배출권 가격은 지난 11월 2만8000원까지 올라 1년 반 사이에 70%나 올랐다. 최근 다소 내렸지만 여전히 2만2000~2만5000원대다.

정부가 배출권 할당계획을 미룬 것이 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정부는 지난 6월 2018~2020년도 할당량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내년 6월 발표키로 하면서 배출권 할당량 발표도 이때로 미뤘다.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자 배출권이 남는 업체들조차 물량 내놓기를 꺼리면서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이다.

배출권 가격 급등은 할당량 부족 기업들로 하여금 배출권 구매 비용을 크게 늘리게 하고, 급기야는 적자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다. 기후변화센터에 따르면 시멘트업계는 배출권 가격이 t당 2만8000원이면 할당량 대비 배출권이 20%만 부족해도 다수가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 자금력이 부족한 업체는 심지어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시장가격의 3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배출권 거래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 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도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정부는 2015년 파리기후총회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37% 감축’이라는 무리한 약속을 했고 이후 기업들에 탄소배출권을 과소 할당해왔다. 만성적 배출권 부족을 겪어오던 와중에 새 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까지 겹치면서 공급이 더욱 줄어 가격이 급등했고 애먼 기업들만 골탕을 먹고 있는 것이다.

탄소배출량을 줄이자는 의도 자체야 나쁠 게 없다. 하지만 미국 일본도 전면 시행하지 않는 제도를 굳이 우리가 앞서가면서 기업 부담을 높일 필요가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배출권이 기업의 중·장기 사업계획 수립을 어렵게 하는 것을 넘어 당장 수지를 악화시키고 생산까지 줄이게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