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개편과 맞바꾼 나라 살림… 공무원 증원도 주먹구구로 결정

입력 2017-12-06 04:35
수정 2017-12-06 09:21
흥정으로 끝난 예산안 심사

민주·국민의당 '주고받기'
김동철 "예산안 합의 발판 선거제도 개편 본격 논의"
법인세·소득세 인상도 지도부 '패키지 딜'로 결정

한국당 항의로 진통 거듭
"민주-국민의당 추악한 뒷거래…밀실야합 원천 무효" 반발
본회의 한때 30분간 정회


[ 유승호 기자 ]
올해도 국회의 정부 예산안 심사는 여야 간 흥정으로 마무리됐다. 예년보다 열흘가량 늦은 지난달 6일에야 예산 심사에 들어간 여야는 4년 만에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을 넘긴 지난 4일에야 지도부 협상을 통해 합의안을 도출했다. 공무원 증원 예산 등 쟁점 사항 외에 법인세·소득세 증세 법안도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막판엔 예산과 무관한 선거구제 개편 논의까지 오갔다. 서로가 한발씩 물러나 절충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에서 불가피한 과정이지만 정치적 유불리를 우선시한 ‘원칙 없는 주고받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주고받기로 결정된 예산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예산안 합의를 발판으로 이제는 다당제 정착을 위한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본격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예산안 처리와 개헌·선거제도 개편에 관한 ‘거래’가 이뤄졌음을 시사한 발언이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조찬 회동을 한 뒤에도 “내년 개헌과 함께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국민의당은 거대 정당에 유리한 현행 소선거구제를 제3 정당도 당선자를 많이 배출할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했던 공무원 증원 규모도 주먹구구로 결정됐다. 당초 정부가 제시한 내년도 공무원 증원 인원은 1만2000명 선이었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7000명, 국민의당은 8000명으로 줄일 것을 요구했다. 합의안 9475명은 3당이 제시한 규모의 평균값 수준이다.

기초연금 인상과 아동수당 도입 논의에선 선거공학이 작동했다. 정부 원안에선 기초연금을 내년 4월부터 월 2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올리고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은 내년 7월 도입할 계획이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복지제도를 대폭 늘리려던 여당과 이를 막으려는 야당이 대립한 끝에 시행시기를 각각 내년 9월로 늦췄다. 초대기업 법인세 인상과 초고소득층 소득세 인상도 예산안과 함께 여야 지도부 간 패키지 딜(일괄 거래)로 결정됐다.

이 같은 흥정은 예산 시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지난해에도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요구대로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에 대한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을 늘리는 대신 여당이던 새누리당 주장대로 법인세는 올리지 않기로 하면서 예산안 협상이 타결됐다.

◆한국당, ‘반대’ 당론…진통 거듭

전날 여야 지도부 간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이날 예산안 처리는 진통을 거듭했다. 한국당 의원총회에선 공무원 증원과 법인세 인상 등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한국당은 예산안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다. 의사 진행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벌여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를 무산시키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오전 11시 예정됐던 본회의는 한국당이 불참해 무산됐다.

한국당은 또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밀실 야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 등에 관한 합의문처럼 보이는 박홍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카카오톡 대화창이 언론사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장제원 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민주당과 국민의당 간에 추악한 뒷거래가 드러났다”며 “예산 심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당 간 이해득실을 주고받는 밀실 야합을 했다”고 비난했다.

한국당 내 기류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민주당 지도부도 초조함을 드러냈다. 우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원내대표 간 합의를 바탕으로 한 세부 마무리 작업이 지체되고 있다고 들었다”며 “납득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밤 10시 한국당이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본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한국당의 항의로 30분 만에 정회되는 등 난항을 거듭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