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달라" 생떼… 연말마다 '미수금 속앓이'하는 로펌들

입력 2017-12-05 19:09
수정 2017-12-06 07:40
Law & Biz

결과 나쁘면 '정산 갈등'
돈 못주겠다 버티는 경우도 허다
떼인 수임료 수백억 달하지만 평판 나빠질까 전전긍긍

로펌들 미수금 전담 직원 두고 '요주의' 기업엔 선금 받기도


[ 고윤상 기자 ] 연말을 맞아 로펌(법무법인)들이 미수금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다. 법률 시장의 경쟁이 한층 심해지면서 매년 그 정도가 더해지는 양상이다. 법률서비스에 대한 인식 개선과 구조적 개선 없이는 매년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게 로펌들의 호소다. 기업 법무팀의 규모가 커지면서 로펌 사정을 훤히 들여다보는 사내변호사들이 늘어난 것도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진단이다.


‘타임차지’ 갈등 빚는 로펌-기업

한 대형로펌의 A파트너 변호사는 최근 자신이 몇 년간 고문 계약을 유지하던 고객사 법무팀 담당자로부터 “아직 지급하지 않은 자문비용을 깎아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추가 비용의 최소 30%를 깎아달라는 내용이었다. 하반기에 자문이 많아지면서 기존 고정 자문비에 추가 비용이 붙은 까닭이다. 회사에서는 ‘연말이 됐으니 미수금을 빨리 회수하라’고 종용하고, 고객사는 돈을 내지 않은 채 할인을 요구하니 그 사이에서 A변호사는 죽을 맛이라고 호소했다. 결국 A변호사는 자신과 팀원들이 추가로 일하면서 청구한 시간당 보수(타임차지)를 줄이는 방식으로 추가 비용을 깎아주기로 했다.

또 다른 대형로펌의 형사팀 파트너 변호사 B씨는 올해 초 맡은 중소기업 형사사건의 추가 비용을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착수금으로 2000만원을 받고, 이후 시간당 추가비용을 청구하기로 했는데 1심 결과가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당사자가 추가 비용 지급을 거부하고 있어서다. B변호사는 “계약상 받아야 하는 돈이지만 결과가 안 좋으면 못 주겠다고 버티는 고객이 꽤 많다”고 말했다.

로펌이 법률서비스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형사나 민사 같은 송무 사건은 착수금에 이어 추가 비용이 붙는다. 형사는 타임차지, 민사는 성공보수가 대표적이다. 형사사건의 성공보수는 금지돼 있다. 타임차지는 변호사들이 일한 시간을 계산해 보수를 청구하는 방식이다. 타임차지에 ‘캡(비용 제한)’을 설정해 제한을 두는 게 일반적이다.

이 경우 타임차지 후 송무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고객과 로펌 간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계약 따라 돈을 내라’는 로펌과 ‘이 결과를 내놓고 돈을 다 받으려 하냐’는 고객과의 분쟁이다. 민사에서도 성공보수를 놓고 흥정하려는 의뢰인이 적지 않다. 이렇게 쌓인 미수금 청구서가 연말만 되면 로펌 변호사들 앞으로 날아든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연말이면 파트너 변호사들에게 수금 내역을 알려주며 미수금 회수를 독촉한다”며 “영업해 사건을 맡고 연말엔 수금까지 다녀야 하는 게 요즘 파트너 변호사들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공개적으로 다투기도 어려워

대형로펌의 미수금 규모는 법인당 최소 수억원에서 최대 수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로펌이 국내 한 대기업 회장의 형사사건을 맡았다가 결과가 좋지 못해 300억원대 수임료를 떼였다는 얘기가 대표적이다. 사건에 따라서는 대표나 파트너 변호사가 사비를 털어 이를 메우기도 한다.

로펌들이 고질적인 미수금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까닭이다. 한 대형로펌은 별도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신뢰도가 확인되지 않은 기업과 계약을 맺을 때는 일정한 선납금을 내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다른 대형 로펌은 어음을 미리 받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 율촌, 화우 등은 미수금을 관리하는 전담 직원까지 두고 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로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대형로펌도 저가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며 “고객이 또 다른 사건 선임이나 자문 계약을 약속하며 미수금을 청산해달라고 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협상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로펌으로서는 돈을 떼이더라도 이미지 하락 등을 우려해 고객과 소송을 벌이며 공개적으로 싸우기도 어렵다는 게 변호사들의 하소연이다.

사내변호사 증가로 기업 법무팀의 영향력이 커진 측면도 있다. 로펌 출신 사내변호사들이 로펌 사정을 뻔히 들여다보고 있어 협상의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한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로펌 속사정을 잘 알면서도 가격 후려치기를 할 때는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법률서비스 비용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 없이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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