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국자본 유출 대비 세율 인하 모색
일본, 법인세 부담 20%로 낮춰도 "충격"
EU "기업 경쟁력 위협" 재무장관 회동
이스라엘, 스타트업 이탈 대비 긴급회의
"미국으로 기업·돈 다 빨려들어갈 것"…중국·일본·유럽 초비상
통화가치 하락·자본유출…대응책 마련 전전긍긍
[ 강동균/김동욱 기자 ]
미국 상원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0%로 인하하기로 하는 파격적 감세안이 통과되자 글로벌 충격파가 일고 있다. 기업 이탈과 자금 유출을 우려한 중국, 유럽연합(EU), 이스라엘 정부는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초비상이 걸렸다.
5일 글로벌타임스 등 중국 관영매체에 따르면 주광야오 중국 재정부 차관은 전날 베이징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미국의 감세법안이 중국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내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세수정책의 국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의제로 삼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G20 국가와 손잡고 미국의 감세정책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메이신위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경제합작연구원 연구원은 “미국 기업이 중국에서 대거 철수하면 중국의 국제수지와 외환보유액, 위안화 환율에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선진국도 감세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중국 정부도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EU 재무장관들은 5일(현지시간) 미국의 세제 개편이 역내 기업과 글로벌 세제에 미칠 영향을 논의했다. 애초 역내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 문제를 논의하려고 했지만 미국 감세 영향을 긴급 안건으로 상정했다.
일본에선 정부가 지난 3일 법인세 실질부담률을 29.97%에서 20%로 대폭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일부 대응책을 발표했지만 기업들은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이다. 이런 혜택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임금을 인상하거나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부문에 투자하는 기업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게이단렌 회장은 4일 “그동안 미국 법인세율이 가장 높고 일본이 그다음이었는데 이제 선진국 중에서 일본이 법인세 부담이 가장 크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23.4%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내년 23.2%로 인하할 계획이다.
긴박하게 대응하는 국가들과 달리 한국 국회는 이날 오히려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감세정책에 중국 정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맞물려 위안화 가치 하락과 자본유출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 재정부 산하 중국재정과학연구원 류상시 원장은 “지난해 기업 영업세를 부가가치세로 바꾸는 세제개편을 통해 지금까지 1조위안에 이르는 감세가 이뤄졌지만 추가로 세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컨설팅업체인 리스콘인터내셔널의 위안톄청 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중국 경제 시스템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의 감세정책이 중국 자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효과를 낳고 해외에 진출하는 중국 민간자본에 대한 흡인력을 키워 미국으로의 자산 이전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 내 미국 기업의 유보 이윤이 대거 미국으로 되돌아가면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철수까지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일본 게이단렌 회장은 지난 4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감세 법안과 관련, “미국에서 활동하는 기업에 직접적인 혜택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에 일본 경제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주요 기업은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닌지 주판알을 튕기고 나섰다. 앞으로 5년간 미국에 100억달러 규모 투자를 결정한 도요타자동차에 이어 닛산도 미국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현지 생산능력 확충을 적극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기술(IT)업체 히타치는 “법인세 인하로 미국 경제가 더 활성화하면 사업에 여러모로 플러스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본무역진흥기구에 따르면 미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의 70%가량이 최근 몇 년간 흑자기조를 이어왔다. 미국의 법인세 인하가 대미 투자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부르노 르마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미국의 감세안이 현실화하면 심각한 어려움을 빚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33.3%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앞으로 5년간 25%까지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한 프랑스지만 미국의 공세가 부담이다. 미국 내 외국 기업의 지사나 현지법인이 자사 제품을 수입해 판매할 경우 소비세 20%를 부과하기로 한 미국의 감세안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예루살렘포스트 등 이스라엘 언론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3일 내각회의에서 미국 법인세 인하 관련 대책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24%인 법인세율을 다음달 23%로 낮출 계획이지만 자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법인세율이 더 낮은 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어 우려하고 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도쿄=김동욱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