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에너지 대전환 트렌드 '3D'에 주목하라

입력 2017-12-04 17:54
"갈수록 비중 커질 신재생에너지
ESS·스마트그리드 기술 고도화
글로벌 신시장 이끌 실력 다져야"

김영훈 < 대성그룹 회장·세계에너지협의회회장 >


글로벌 에너지산업은 지금 이 시간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격랑의 중심에 서 있다. 최근 세계에너지협의회(WEC)는 독일 본에서 열린 2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3)에서 ‘세계 에너지 트릴레마(trilemma) 2017’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세계 에너지 전문가들의 심층면접과 설문조사를 통해 에너지 분야 현안과 전망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함께 발표하는 ‘에너지 트릴레마 인덱스’, 즉 국가별 순위에 더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다.

트릴레마 인덱스는 매년 각 국가의 에너지 삼중고, 즉 △에너지 안보 △에너지 형평성 △환경적 지속가능성 등 세 가지 항목에 대한 평가를 하고 이를 토대로 종합순위를 발표한다. 한국은 종합순위가 지난해 44위에서 올해 39위로 5단계 상승했지만 한국이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교하면 아쉬운 수준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국가별 순위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에너지 대전환을 이끄는 새로운 트렌드를 ‘3D’라는 키워드로 정리한 대목이다. 3D는 ‘탈(脫)탄소화(decarbonisation)’, ‘분산화(decentralisation)’, ‘디지털화(digitalisation)’다. 탈탄소화와 분산화, 즉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탄소배출 감축과 분산형 에너지 확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익숙하다. 에너지산업의 디지털화는 에너지 생산·저장·유통·소비 등 모든 단계에서 디지털 기술의 영향력이 커지고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큼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에서 아직 이 변화에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는 점은 다소 안타까운 부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절반가량인 17개국의 재생에너지 비율이 이미 30%를 넘어섰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커질수록 국가 전체 전력망의 안정성은 위협을 받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전체 에너지믹스에 조화롭게 포용 또는 융합하는 최적의 에너지 저장 및 유통시스템 구축이 향후 에너지 대전환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금석이 되리라고 본다. 그것이 에너지저장장치(ESS), 스마트 그리드, 에너지 블록체인, 예측분석 시스템 등 새로운 에너지분야 혁신기술들이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은 국가들에는 이런 기술이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전력시스템 불안정을 해결할 핵심 솔루션이 되고 있다.

이 기술들은 에너지 시장에서 게임의 법칙을 바꿀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기술들은 ‘파괴적 혁신 기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극소수 산업체가 다수 소비자에게 일방향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다수의 프로슈머가 중앙제어시스템이 아닌, 접근이 자유로운 새로운 플랫폼 또는 새로운 유통망을 통해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에너지를 거래하게 될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한국도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린다는 이른바 ‘신재생 3020 비전’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우선은 신재생에너지 등 분산형 에너지 공급 확대에 치중해야 하겠지만 향후 좀 더 광범위한 에너지 전환에 대비하기 위해 이와 같은 혁신 기술개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시장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분산형 에너지시스템 확대가 가져올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기회도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저탄소 에너지생산, 에너지효율개선, 스마트그리드 구축 및 사이버보안, ESS, 사물인터넷(IoT), 수송용 에너지분야, 빅데이터 기술 등 광범위한 에너지 및 연관분야는 협력과 융합을 통한 혁신이 필요하며, 정부는 유연하고 진취적인 정책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한국이 에너지 대전환을 이끄는 주도 국가로 부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영훈 < 대성그룹 회장·세계에너지협의회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