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일 금융부 기자) 허인 신임 국민은행장(사진)은 지난주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취임식을 갖고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은행장으로 선임된 후 공개석상에 처음 나타난 허 행장과의 간담회에서 놀란 기자들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본 최고경영자(CEO)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영업의 달인’으로 알려진 허 행장이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인물’일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는데, 예상과 달리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꾸밈없는 대답으로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을 가장 당황하게 만든 대답은 정보기술(IT) 혁신 방향에 대한 질문에서 나왔습니다.
“사실은 IT는 제가 잘 모르는 분야입니다.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이 통합할 때 전산통합추진 팀장을 맡았지만 그런 부분은 IT라기보단 업무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IT에 대해서도 은행 경영의 한 축이기 때문에 앞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불과 하루 전 주주총회장에서 윤종규 회장이 허 행장을 오랜기간 IT 업무를 경험한 전문가로 소개했습니다. 같은날 오전 취임식에선 공식 취임사를 통해 “디지털 뱅크는 KB국민은행의 핵심 전략이자 미래 성장동력”이라고 스스로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행장으로 내정된지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있었는데 이런 대답을 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적당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주류에 편승하기 위해 허세도 부리는 다른 최고경영자(CEO)와는 다른 느낌이라 신선했습니다.
곧바로 이어진 경영 목표와 포부에 대한 질문에도 크고 화려한 목표를 내세우기보다 ‘지속가능한 경영’, ‘일관성 있는 흐름에 따른 경영’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임기 내 이루고 싶은 혁신의 목표와 방향을 묻는 질문에 대해선 “경영자가 임기내에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건 무리를 일으킬수 있다”는 말로 대답했습니다.
이어 그는 “요즘 경영은 지속가능한 전략을 취해야 하는데 ‘보여주기 식’으로 기간을 정해서 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민은행이 추구하는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고 큰 경영전략의 한 부분을 맡아 후임에게 잘 넘겨주는 역할을 하겠다”며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을 너무 의식하는 발언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행장이지만 몸을 상당히 낮췄기 때문입니다. 과거 지주회장과 은행장의 다툼으로 KB금융이 수난을 겪은 것을 염두에 두고 오버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끝) /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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