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75일 만에 ICBM 도발
한반도 정세 급랭
미국, 테러지원국 재지정 등
국제사회 대북제재에 반발
핵 보유국 의지 재천명
[ 김채연 기자 ]
북한이 75일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것은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등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에 대한 반발과 함께 핵무력 완성의 목표를 재확인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추가 무력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돼 한반도 정세는 또다시 긴장이 고조될 전망이다.
북한은 지난 9월15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 이후 한동안 도발을 멈춰 국제사회 안팎에선 대화 국면 전환 기대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북한은 29일 도발로 대화보다 핵무력 고도화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아울러 미국이 요구해온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대화의 장에는 나올 의지가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북한 당국자도 이날 평양 주재 CNN방송 인터뷰에서 “핵 억지력을 입증할 때까지 미국과의 대화에 관심이 없다”며 “핵 억지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두 단계가 필요한데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ICBM 시험과 지상 핵폭발 또는 대규모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분명히 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등을 일단 지켜본 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등 강한 압박 정책에 나서자 여기에 맞서는 강 대 강 대결 구도를 형성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하면서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시험을 한 것”이라며 “미국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국제사회 압박은 부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연내 대기권 재진입 기술 보완 등 추가적인 기술적 진보를 이룬 뒤 이르면 정권 수립 70주년인 2018년 핵무력 완성을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ICBM 완성에 근접하고 있다는 걸 대내외에 과시했다”며 “내년 북한 정권 70주년에 맞춰 핵무력 완성 선언 스케줄 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다만 아직 실전 배치까지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기술적으로 불완전한 부분이 있어 연내에 태평양을 향해 탄도미사일 발사 등 몇 차례 더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추가 도발로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국면 전환의 중대한 계기로 삼으려던 한국 정부의 구상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 시기를 저울질하며 최소한의 남북 대화채널 복원을 모색해온 정부의 노력은 당분간 힘을 받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단기적으로 대화 국면 전환이 어렵겠지만 물밑 접촉은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현재로선 외교 옵션들이 유효하고 열려 있다”고 말했다. 당장은 미국 등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 결의를 도출하는 등 후폭풍이 불가피하지만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전격적으로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