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만명 소액 연체 채무 탕감
형평성 논란 일으키는 '6조2000억 빚 탕감'
정부 예산없이 민간 기금·출연금으로 진행
최종구 금융위원장 "도덕적 해이 최소화 노력"
[ 정지은 기자 ]
정부가 29일 내놓은 ‘사상 첫 대규모 빚 탕감’ 정책에 금융계 안팎이 술렁이고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대출원금 전액을 탕감해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규모도 6조2000억원에 이른다. 그동안은 법원에서 개인파산 선고를 받지 않는 이상 채무 원금을 모두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다.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을 돕겠다는 복지성 정책이지만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내년 2월부터 빚 탕감
빚 탕감 대상은 지난달 31일을 기준으로 1000만원(원금 기준) 이하의 빚을 10년 이상 갚지 못한 장기소액연체자 159만2000명이다. 연체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국민행복기금이 관리하는 채권 83만 명(3조6000억원)과 국민행복기금 외 금융회사, 대부업체 등 민간이 보유한 76만2000명의 채권(2조6000억원)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소한 대상자의 절반(79만6000명) 이상은 빚 탕감 지원을 받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탕감 정책은 내년 2월부터 시행한다. 국민행복기금 내 장기소액연체자에 대해선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요건에 해당하는 대상자를 추려 심사 및 소각을 진행한다. 민간 쪽 장기소액연체자의 채권은 별도 기구를 신설해 매입 및 소각을 추진한다. 이때 기구 설립 및 채권 매입에 들어가는 재원은 민간에서 충당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최 위원장은 “정부 예산 없이 모두 민간의 자발적 기부금과 출연금 등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장기소액연체자가 이렇게 많아진 데엔 상환능력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부실대출을 해준 민간의 책임도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 팔 비틀기 논란
정부가 빚 탕감에 예산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것은 ‘혈세 투입’ 논란을 의식해서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공약을 냈을 때도 ‘왜 내가 낸 세금으로 다른 사람의 빚을 갚아줘야 하느냐’는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혈세 논란 대신 ‘민간 팔 비틀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정부가 민간자금을 이용해 생색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은행 임원은 “이미 국민행복기금도 민간 출연금으로 꾸려왔는데, 대부업체 채무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며 “자발적 출연금을 모으겠다지만 암묵적인 강요가 아니냐”고 비판했다.
2013년 3월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은 은행, 상호금융, 대부업체 등 4211개 금융회사로부터 연체채권을 사들인 뒤 채무조정을 통해 빚을 줄여주는 식으로 관리돼 왔다. 빚의 30~90%를 탕감해주고 나머지 빚을 최장 10년간 나눠 갚도록 하는 식이었다. 이때도 기금 종잣돈은 신용회복기금과 캠코 차입금,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 등으로 마련했다.
◆정부 바뀔 때마다 나오는 빚 탕감
빚 탕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물 보따리’ 풀어놓듯 내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과거 정부도 규모와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채무조정 정책을 대부분 내놨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이자 면제, 채무 일부 탕감 후 분할상환 등의 정책을 폈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떤 방식으로든 빚은 갚아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야 할 판에 정부가 바뀔 때마다 빚 탕감 정책을 내놓으니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빚 탕감 정책이 계속 나오고 그 규모가 커질수록 부작용도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도 “빚을 안 갚아도 정부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쌓이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며 “도덕적 해이가 확산돼 금융시장을 교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지적을 감안해 도덕적 해이 최소화에 신경 쓰겠다는 방침이다. 최 위원장은 이번 대책이 일회성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최대 3년의 채권 소각 유예기간을 둬 상환 의지 등을 판단하고 부정 감면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페널티를 줄 계획이다. 최 위원장은 “이번 탕감을 계기로 더 이상 장기소액연체자가 불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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