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화산재의 두 얼굴

입력 2017-11-28 18:01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인도네시아는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있어 지진과 화산 폭발이 자주 일어난다. 활화산만 130개나 된다. 1883년에는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로 3만6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산재가 50㎞ 상공까지 치솟았다. 이것이 햇빛을 막아 지구 기온을 0.5도 떨어뜨렸다. 기후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5년이 걸렸다.

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 때에도 화산재 때문에 피해가 컸다. 약 150억t의 화산재가 덮쳐 1만2000여 명이 희생됐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1.1도 내려가는 바람에 유럽에 혹한이 닥쳐 수십만 명이 죽었다. 이듬해 여름에도 기온이 회복되지 않아 ‘여름 없는 해’가 되기도 했다.

화산재는 이처럼 지구적인 재앙을 불러온다. 피해 지역이 비교적 좁은 용암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50여 년 전 세계적인 휴양지 발리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로 2000여 명이 떼죽음을 당한 것도 화산재 때문이었다. 지난 주말부터 불을 뿜기 시작한 발리의 아궁 화산에서도 화산재가 7900m 상공까지 솟구쳤다.

화산재는 돌가루와 유리 알갱이 등 작은 광물 파편들로 구성돼 있다. 한 번 덮치면 화산 주위의 동식물은 물론이고 폼페이 같은 도시도 순식간에 매몰시켜버린다. 일본에서는 약 6000년 전 대폭발로 화산재가 전 국토를 균일하게 덮어 새로운 지층을 형성했다. 화산재가 쌓여서 굳은 응회암은 유적 발굴 조사와 활단층 분석 등의 주요 기준이 되기도 한다.

화산재가 하늘로 치솟으면 항공대란이 빚어진다. 1982년 갈룽궁 화산 폭발 땐 인근 상공을 지나던 영국 여객기 보잉747의 엔진 4개가 동시에 멈췄다. 2010년에는 아이슬란드 화산 분화 때문에 전 유럽 항공 노선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나라도 화산재 피해를 본 적이 있다. 백두산이 폭발한 946년 ‘하늘에서 커다란 천둥소리(天鼓鳴)가 들렸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실려 있다. 백두산 화산재는 1000㎞ 떨어진 일본까지 날아갔다. 교토 동쪽 나라 지역의 사찰 고후쿠지(興福寺) 문헌에 ‘946년 11월3일 하얀 재가 눈처럼 떨어졌다’는 대목이 나온다.

화산재가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인간과 생태계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화산재에는 식물 성장에 필요한 성분이 많이 포함돼 있어 토양을 기름지게 해준다. 건축자재와 인테리어 제품으로도 활용된다. 당구장에서 사용하는 초크 역시 고급품은 화산재로 만든다.

제약회사와 화장품회사들은 화산재를 대량으로 수입한다. 화산재에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해서 ‘치료의 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피부 보습과 탄력 유지, 체내 독소 제거, 미용팩, 천연비누 등에도 쓰인다. 재앙과 복을 동시에 주는 화산재의 두 얼굴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