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차별·부작용 낳는 청약제도 개선해야"

입력 2017-11-28 13:46
민간아파트 청약가점제 개선 필요성 제기
2030 "청약으론 내 집 마련 불가능"…가점 높이려 위장전입
"지역·규모별 다른 기준 적용을"…인터넷청약 자동화 요구도



정부가 생애단계와 주거단계별 주거대책을 내놓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청약제도 역시 맞춤형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점제 확대 적용 이후 젊은 세대의 민간아파트 당첨 가능성이 사실상 없어지는 등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다양한 실수요자들이 혜택을 받도록 청약제도를 지금보다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8일 기준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엔 청약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제안이 20여건 올라왔다. 실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점제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부양가족가점을 없애 위장전입으로 인한 부당 당첨을 원천차단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신혼부부나 다자녀가구에게 더 높은 가점을 줘야 한다는 등 가점제를 현실적으로 보완 및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수요자 위한다지만…“2030 역차별”

청약가점제는 2007년 도입된 이후 때마다 적용 비율이 바뀌었지만 가점 항목과 단위는 그대로다. 84점이 만점으로 부양가족(35점)과 무주택기간(32점), 청약통장 가입기간(17점) 순으로 비중이 높다.

지난달 주택공급규칙 개정으로 가점제를 통해 공급되는 아파트의 비율이 최고 100%까지 상향되면서부턴 중장년층만을 위한 제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상대적으로 가점이 낮을 수밖에 없는 신혼부부 등 2030세대는 사실상 청약을 통한 내 집 마련이 힘들어져서다. 서울 아파트의 가점 ‘커트 라인’이 40점대 안팎인 반면 자녀가 없는 30대 신혼부부의 경우 20점대를 넘기기도 힘들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청년층이 배제되지 않도록 가점구간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항목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만 30세 이후부터 1년마다 2점이 가산되는 무주택기간(32점)은 젊은 세대를 지나치게 배제하는 기준이 적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만 19세 때부터 세대분리해 사회에 진출한 세대주의 경우 10년 동안 무주택자로 살더라도 만 29세가 되는 시점에 무주택기간 가점은 0점이다. 만 40세 유주택 세대주가 집을 매각한 뒤 5년만 지나도 무주택 가점 10점이 생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현행 가점제는 만 30세 이전에 결혼한 경우에만 혼인신고일부터 가점이 계산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투기세력을 차단하기 위한 명분의 가점제가 일률적으로 적용되면서 실수요자가 피해를 입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며 “주택마다 수요층에 차이가 있는 만큼 면적별로 기준을 차별화하는 등의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위장전입·고액전세 놓치는 부작용도

부양가족 가점(35점)의 경우 위장전입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청약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을 포함해 1명당 5점이 가산돼 전체 가점제 항목 가운데 단위가 가장 높아서다.

실제로는 함께 살지 않는 부모를 자신의 주민등록등본에 등재시키는 등 위장전입 의심사례도 속출한다. 서울 강남 새 아파트의 경우 전용면적 59㎡(구 24평형)에 5~6인가구가 청약하는 경우가 생기는가 하면 인기 지방도시의 경우 분양을 전후로 인구가 증감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위장전입 여부는 해당 주택을 일일이 방문하지 않는 이상 확인하기 힘든 만큼 사실상 단속이 어려운 것으로 부동산업계는 보고 있다.

이른바 ‘금수저’들이 가점제의 수혜를 입는다는 지적도 있다. 주택 구입능력이 있음에도 취득세와 재산세 등 세금을 피하기 위해 전세로 거주하는 이들까지 무주택자로 분류돼서다. 3억원짜리 아파트에 자가로 거주하다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 1주택 세대주보다 10억원짜리 전세로 살고 있는 세대주가 더 높은 가점을 받는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현행 청약제도는 소득능력을 판단할 기준이 없어 가수요를 걸러내지 못한다”면서 “정말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정교한 손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지자체에서 청약제도를 관리할 경우 개별 세대주들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갖고 있는 데다 수요와 공급 상황에 맞춰 지역별로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며 “주택이 필요한 정도에 따른 ‘맞춤형 청약’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데이터가 쌓이면 청약뿐 아니라 다른 주거복지 시스템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청약통장 가입기간(17점) 가점 항목은 변별력이 낮아져 폐지 또는 변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고준석 센터장은 “국민 대부분이 청약통장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통장 가입기간에 대한 가점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고 말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지방자치단체별 청약 1순위 자격요건을 충족한 청약통장은 총 1220만좌로 전체 통장수(2270만좌)의 절반 이상이다. 국민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청약 1순위 자격을 갖춘 셈이다. 최대 가점(17점)을 꽉 채운 거치 15년 이상 청약예금과 부금은 70만좌를 넘는다.

◆“인터넷청약 자동화 필요”

인터넷청약은 자동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청약을 하려면 아파트투유 홈페이지에서 가점 항목을 스스로 입력해야 하는데 자신의 점수를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아 오입력으로 인한 부적격 당첨자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가점을 허위로 입력할 수 있다 보니 허위로 입력한 가점을 통해 당첨된 뒤 계약을 포기해 고의로 미계약 물량을 만들어 내는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한 대형사 분양팀 관계자는 “그동안 청약제도가 지속적으로 홍보된 점을 감안하면 부적격 당첨자의 비율을 갈수록 줄어들어야 하지만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며 “수요자들은 자신의 청약자격이나 가점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적격자를 줄일 수 있는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교언 교수는 “연말정산 시스템이 자동화된 것처럼 본인을 인증하면 무주택기간이나 가족사항 등의 조건이 자동으로 입력되도록 시스템이 개편돼야 오입력이나 허위 가점으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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