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착화된 저성장에 고용 불임 심화
투자금융시장 형성·세제 지원으로
부품소재·서비스업 경쟁력 높여야
유병규 < 산업연구원 원장 >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20년이 지났다. 한국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환란(換亂)을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여전히 예전 활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면서 일자리 문제가 한국 경제·사회의 가장 시급한 해결과제로 부상했다.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깊어진 것이다.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청년실업률은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게다가 취업근로자 3분의 1이 정규직 임금의 절반 수준인 비정규직이다. 고용악화의 근본원인은 성장률 저하 속에서 고용창출력마저 떨어지는 ‘고용 없는 성장’에 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대비 취업자수인 고용계수가 2000년 2.58에서 2016년 1.74로 낮아졌다.
한국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 저하는 산업화시대에 추진된 성장전략의 유효성이 약화됐음을 뜻한다. 지난 성장전략하에서는 대개 산업생산이 늘면 고용은 자연스럽게 동반해 늘어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동안은 투자증대로 인한 산업발전이 바로 고용확대로 이어졌다. 이제는 산업여건 급변으로 산업성장과 고용증가의 선순환 고리가 크게 느슨해졌다.
우선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구조조정과 자동화 설비의 확산 등으로 생산성은 향상됐지만 경제성장 단위당 창출되는 일자리 수는 줄게 됐다. 수출 대기업이 주도하는 성장효과가 내수 중소기업으로 파급되는 ‘낙수효과’마저 미약해졌다. 지식정보 기술의 발달로 국내 산업구조가 좀 더 첨단화되면서 이에 필요한 핵심 부품소재의 수입의존도가 높아졌으며, 국내 생산비용 상승에 대응하고 수출 거점 확보를 위해 해외투자가 급증한 까닭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수직적 원·하청 구조도 노동시장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조업 중심 지원정책으로 서비스업이 영세성과 저생산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양성이 미흡한 점도 고용확장을 어렵게 한다. 여기에 과도한 정규직 혜택 중심의 경직적인 고용시장 구조가 일자리 확장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고용 불안을 해소하려면 고용 불임상태에 빠진 기존의 산업구조, 기업생태계, 고용시장을 동시에 개혁해 부문 간 상승효과를 극대화하는 복합형 혁신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우선 산업투자의 활력을 살려 고용 창출력을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각 산업에서 자발적 사업 구조개선이 원활히 일어날 수 있는 정책여건을 시급히 조성할 필요가 있다.
국내 제조업은 세계적인 저성장과 공급과잉으로 업종마다 한계기업이 늘고 있다. 일본은 기업들의 사업재편을 지원하는 산업활성화 정책을 지난 20년간 추진해 이제 산업재부흥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급증하는 해외투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기존에 조성된 산업공단, 기업도시, 새만금 지역 등의 입주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비용절감 효과를 높이는 일부터 검토해야 한다. 부품소재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서비스업의 다양화에 필요한 연구개발과 신규투자를 확대할 투자금융시장 형성과 세제상 유인책 마련도 절실하다.
이와 함께 기업 간 성장 촉진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상생형 기업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는 것과 함께 중소기업의 독자생존력과 교섭력을 높이는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동시에 강구해야 이의 실효성이 높아진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중소벤처기업을 키우는 일이 결국 기존 대기업 중심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꽉 막힌 일자리 확장체제를 뚫어내려면 고용시장 선진화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을 철폐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하에 근무시간과 형태, 임금 등 계약조건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저성장 등으로 경제 전체 임금총액이 크게 늘지 않는다면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일이 일자리를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유병규 < 산업연구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