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이익 제공 따른 주총결의 무효"… 주총참여 독려시 주의해야

입력 2017-11-24 18:49
<28> 이익공여와 주주총회결의 효과 (대법원 2014년 7월11일 선고 2013마2397 결정)

권재열 <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회사가 경영상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다면 회사로서는 그 문제가 주주총회에서 공론화되는 것을 꺼릴 것이다. 그런데 회사의 약점을 알게 된 자가 해당 회사 주식을 몇 주 취득한 후 주주총회에 참석해 약점을 들추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 금품 요구자가 이른바 전문적인 ‘주주총회꾼’일지라도 회사는 그가 주주인 이상 주주총회 참석을 막을 수 없다. 그가 주주총회에서 집요하게 질문을 하더라도 그 행위가 주주의 권리행사로 인정된다면 그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

만약 총회꾼이 자신의 금품 요구를 거절한 회사에 대해 이사 퇴임을 요구하거나, 사전에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질문서를 보내거나, 무의미한 질문을 끝없이 해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경우 회사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해 회사는 총회꾼의 요구를 들어주거나 침묵을 조건으로 대가를 지불하기도 한다. 이런 총회꾼을 퇴치하려는 목적으로 1984년 상법에 회사가 주주의 권리행사에 관해 특정한 주주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공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일본법을 모델로 해 신설했다.

회사제도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상법상 주주에 대한 이익공여 금지 제도는 서구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성문법적으로 살펴보면 주주에 대한 이익공여 금지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제도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상법상 이익공여 금지 규정은 30여 년간 전혀 활용되지 않다가 2014년에서야 이 규정을 적용한 최초의 대법원 결정이 나왔다.

‘골프장예약권+20만원 상품권’ 제공

이 결정의 대상이 된 사실관계를 들여다보자. A주식회사는 체육시설업(골프장업) 등을 목적으로 1451주의 보통주를 발행한 회사인데, 주주 1인당 1주를 소유하면서 주주회원제로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A회사는 이사회를 개최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실시할 임원선임 결의에 관한 사전투표의 시작 시기를 정관에서 정한 날보다 연장하고, 사전투표에 참여하거나 주주총회에서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 주주들에게는 골프장 우선예약권 및 2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제공키로 결의했다. 즉 동 이사회는 사전투표를 하는 주주회원 1인당 1회에 한해 사전투표 기간에 골프장 예약이 가능하도록 하고, 사전투표를 한 주주회원이 부득이 라운드를 하지 않을 경우 주주총회 이후 1회의 예약 기회를 부여하거나 비회원 및 주주회원에게 양도할 수 있게 했으며, 상품권은 골프장 이용료로 사용하거나 골프장 내 용품점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주주총회에서 기존 대표이사 B 등이 임원으로 선임되자, 대표이사 등의 후보자로 등록했다가 선임되지 못한 주주 C 등은 A회사가 사전투표에 참여한 주주들에게 이익을 제공한 것을 문제 삼아 주주총회 결의의 부존재 또는 취소사유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B 등에 대한 직무집행정지가처분을 구했다.

이익 제공은 주총결의 취소 사유

대법원은 골프장 예약권과 상품권은 △주주권 행사와 관련돼 교부됐고 △그 액수도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며 △사전투표 기간의 투표 결과가 대표이사 후보들의 당락을 좌우한 요인이 됐다고 봤다. 이 사건에서 주주에게 제공된 이익은 투표율 제고나 정족수 확보를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의결권이라는 주주의 권리행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의도로 공여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상법상 금지되는 주주의 권리행사와 관련된 이익공여에 따른 의결권행사를 기초로 한 이 주주총회는 그 결의 방법이 법령을 위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주주총회결의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하자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에서 총회꾼은 회사에 대해 금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회사가 주주에게 이익을 제공한 것이 문제가 됐다. 대법원은 상법상 이익공여 금지 제도가 주주총회에서 주주권 행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풀이하면서 이익 제공으로 인해 회사에 어떤 손해를 야기했는지의 여부는 살펴보지 않았다. 대법원은 사전투표에 참여하거나 주주총회에서 직접 투표한 자가 이익을 제공받고서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한 만큼 그 결의방법이 법령에 위반된 것이어서 주주총회결의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일반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의사(議事)가 불공정하게 진행되면 결의방법이 법령에 위반된 경우에 해당하는데, 이익공여가 있는 경우도 법령 위반에 해당하는 다른 사유로 본 것이다.

사실 주주가 회사로부터 일정한 이익을 제공받았다고 하더라도 주주총회에서 반드시 회사가 원하는 대로 투표를 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이익을 얻은 대가로 의결권을 행사한 것은 주주권 행사의 효력 자체에는 영향을 미치므로 주주총회 결의에 하자가 있다고 풀이한 것이다. 주주총회에서의 투표가 비밀투표를 원칙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회사가 통과시키기를 원하는 안건에 이익을 제공받은 자가 찬성투표를 했는지의 여부가 밝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초 그 주주가 찬성투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과연 이익을 제공받은 것이 주주권 행사의 효력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섀도보팅제도’ 폐지 후 혼란 우려

‘그림자투표제도’로 번역되는 섀도보팅제도(shadow voting)가 올해로 일몰될 예정이다. 섀도보팅제도는 주주총회의 정족수 확보를 위해 1991년 신설됐다. 한국예탁결제원이 예탁받은 주식에 한해 설령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들의 찬성과 반대의 비율대로 투표한 것으로 간주해 정족수 미달로 인해 주주총회가 무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이미 한 차례 수명을 다한 것으로 여겨 2015년부터 폐지될 운명에 처했으나, 상장법인 측에서 준비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를 드는 바람에 올 12월31일까지 3년간 폐지가 유예됐다.

만약 섀도보팅제도를 대신하거나 이를 보완할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예정대로 올해 말에 폐지된다면 상당수 상장법인이 주주총회 안건을 처리하지 못할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상장법인이 의사정족수 부족에 의한 주주총회의 파행을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주를 상대로 주주총회 참석을 독려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이 대법원 결정은 주주에게 제공되는 경제적 이익이 사회통념상 허용되기 위해서는 그 액수가 상당히 작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회사가 주주총회 참석률을 높이고자 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주주총회를 완전히 망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말하자면, 고가의 회원권을 가진 주주회원에게 A회사가 자신의 골프장에 대한 예약권과 그 골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2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제공한 것이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선 ‘위법한 경제적 이익’이 제공된 경우로 보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일본에서는 5000원짜리 금품 줘도 주총결의 취소

상법상 이익공여 금지 규정은 일본 상법 규정을 받아들인 것이란 점에서 이익 공여가 쟁점이 된 사건에서는 일본의 판례를 참조할 수밖에 없다. ‘2013마2397 결정’에서도 대법원은 일본의 2007년 모리텍스 사건 판결을 참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리텍스 사건에서 피고인 주식회사의 주주인 원고는 피고 주주총회의 의안에 대한 절차가 불법이기 때문에 일본 회사법에 의거해 결의의 취소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도쿄지방재판소는 이사 및 감사 선임과 관련해 주주 측 제안과 회사 측 제안이 각각 제출된 상황에서 회사가 자신의 제안에 동참을 호소하는 문서와 함께 500엔 상당의 선불카드를 주주에게 배포한 것은 일본 회사법이 금지하는 이익공여에 해당한다며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여 결의를 취소한 바 있다.

주주가 한화로 약 5000원 상당의 선물을 받았다고 해서 주주총회 결의가 취소된 것이다.

권 재 열 <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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