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민주당 대표에게 듣는다
지대개혁 화두 제시 이유는…
노력의 결실보다 큰 불로소득
초기비용 높여 청년창업 막아
4차 산업혁명도 불가능할 것
[ 김형호/서정환/배정철 기자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시종 여유가 넘쳤다. 당 대표를 맡아 ‘탄핵정국’을 넘어 ‘정권교체’까지 이뤄내며 민주당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대통령에 대한 높은 국정 지지도에 힘입어 당 지지율도 수개월째 5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엔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이 정당 사상 처음으로 150만 명을 돌파했다. 추 대표는 지난 22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1시간여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적폐 청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 등 정치 현안뿐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법인세 인상, 지대추구 문제 등 경제 현안에서도 자신의 철학을 담아 막힘없이 풀어냈다.
추 대표는 내년 8월까지 남은 임기 중 최대 목표로 6월 지방선거 승리를 꼽았다. “수도권에서는 경기·인천을 되찾아오고 영남권에서는 분위기가 괜찮은 부산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두고는 “소는 누가 키우고, 당의 맏며느리는 누가 하느냐”고 답했다.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해 대선과 지방선거를 모두 이긴 ‘2관왕 당 대표’ 타이틀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최근 지대(地代)개혁을 화두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땀보다 땅에 더 많은 보상이 따르는 구조다. 땀 흘려 창의적인 노력을 하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서 취하는 불로소득이 부의 90%에 달한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데도 너무 많은 지대를 초기 비용으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창의성을 유인해낼 수가 없다. 젊은이들이 창발성을 발휘해 창업하려고 해도 초기 비용이 너무 높아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다.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문턱을 낮춰 땀이 보상받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지대 문제는 아파트보다 상업용 부동산시장이 더 심각하지 않나.
“민생뿐 아니라 공공 분야에서도 심각하다. 지역구 내 소방도로가 진입로 100m까지만 넓혀 놓고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간다. 땅값이 너무 비싸 예산 100억원을 가져와도 집 2~3채 보상하고 나면 끝이다. 불이 나도 소방도로가 없어 진입이 어렵다. 지대 추구 늪에 빠져서는 4차 산업혁명도 불가능하다. 언제까지 자동차, 반도체 등에만 의지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의식을 던져서 한국 사회의 병폐를 고쳐보자는 취지다.”
▷야당의 반발에도 당·정이 법인세 인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세계적인 법인세 인하 흐름 속에 우린 거꾸로 간다는 지적도 있다.
“경기 사이클을 보지 않고 외국은 세금을 낮추는데 우린 반대로 간다고 봐서는 안 된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부 때 최저임금을 올리는 등 나름 소득주도 성장을 펼쳤다. 경제정책도 공정 분야에 집중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의 내부성장 정책 과실을 바탕으로 ‘국내에 투자하라, 세금을 낮춰주겠다’는 취지로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공급 위주 정책을 펼치면서 일부 수출기업만 잘나가고 내수경제는 말라버렸다. 사이클로 보면 우리나라는 소득주도 성장에 방점을 둘 때다. 내수 경기가 살아나면 기업에 대한 세금을 낮춰주는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다.”
▷정책을 두고 민주당은 잘 안 보이고 청와대만 보인다는 얘기가 많다.
“당·청 간에 협업이 아주 잘된다. 국정 100대 과제도 산실은 당이었다. 여당은 정부의 정책 모태로 자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례로 포항 지진 사태 이후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내진 강화 문제가 나왔는데 건설 비리를 못 잡으면 내진설계 예산을 투입해봐야 돈이 다 새나간다고 지적했다. 과거 환경노동위원장을 할 때 소형 건설사 사장에게 비자금을 만들어내는 건설사 비리 구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건설 비리와의 전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더니 장하성 정책실장이 맞는 지적이라면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당에서 생색을 안 내서 그렇지 핵심을 모두 만지고 있다.”
▷일각에선 ‘86 운동권’ 출신 청와대 참모들의 반기업 정서를 우려하고 있는데.
“청와대는 일반 보좌 업무는 임종석 비서실장, 정책은 장하성 정책실장이 맡고 안보는 안보실장이 맡는 3축으로 움직인다. 정책을 책임지는 장 실장이 본인도 자본소득을 누리고 자본주의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분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공수처가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검찰 권력은 시간이 지나면 항상 ‘권력 바라기’가 되는 속성이 있다. 권력형 부정부패를 뿌리뽑기 위해 정부·여당이 나서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는데 야당이 반대하는 게 믿기지 않는다. 공수처가 있어야 검찰도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 제2의 우병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국당을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선출 권력이 국민 의사에 반하고 우쭐대면 도태된다. 공수처 설치는 시간 문제다. 올해 하느냐 내년에 하느냐의 문제다. 내년 지방선거, 그 뒤 총선 이후까지 감안해 5년이라는 일정 속에서 반드시 해낼 것이다. 검찰 독립을 위해서 만드는 공수처 수장의 인사추천권을 야당이 달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 식으로 협상하지 않을 것이다.”(민주당은 공수처장의 여야 합의 추천을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거론되면서 적폐 청산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MB가 ‘적폐 청산 그만하고 미래를 봐라. 과거에 집착한다’고 비판했다는데 후진적 관행을 그대로 두고 가자는 얘기인 것이냐. MB를 겨낭한 정치 보복이 아니다. BBK, 다스 등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으면 경제사범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부정하게 자본을 축적했으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폐를 도려내고 공정한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지난번 미국 방문 때 ‘미국 측의 FTA 재협상 강도가 거셀 것’이라고 전망했다.
“4박5일 방미 일정 동안 경제 관련 장관급 인사 세 명을 만났다. 미국은 한·미 FTA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을 위한 일종의 지렛대로 삼는다는 느낌이었다. 나프타 개정을 위해 한국 빰부터 때리는 격이다. 미국 통상당국에 농산물을 추가 개방하면 캐나다, 호주산만 이득을 보는데 실리도 없는 요구를 하면서 정치적으로 압박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이 무기를 엄청나게 사주지 않느냐’고 했더니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FTA만 놓고 얘기하자고 하더라. 우리도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 150만 명 시대를 열었다.
“외국에도 없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 국빈 만찬 자리에서 백악관 참모들에게 설명했더니 깜짝 놀라더라. 독일 사민당의 2.5배에 달한다. 유럽은 정당에서 당원이 빠져나가는 추세다. 정당 지지율이 50%를 유지하고 당원도 크게 늘어 꿈인가 싶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모인 당원이라 일부 빠져나가더라도 2분의 1 정도만 유지하면 대성공이다.”
김형호/서정환/배정철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