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얼어붙은 땅, 동토(凍土)의 북한을 빠져나오는 행위를 흔히 탈북(脫北)이라고 적는다. 그러나 이는 근래에 새로 만들어진 말이다. 그와 비슷한 흐름에서 일찌감치 우리가 자주 사용했던 단어는 도망(逃亡)이다. 피해서 달아나는 도주(逃走), 이리저리 떠도는 유망(流亡)이 합쳐진 말이다.
제 본분을 망각해 엉뚱한 짓을 저지르면 닥치는 게 망신(亡身)이다. 이어 망조(亡兆)가 들어 패망(敗亡)에 이르고, 이어 다시 쇠망(衰亡)을 거듭하다 멸망(滅亡)에 닿는 일을 누구나 피하려고 한다. 죽어 없어지는 상태를 일컫는 亡(망)이라는 글자는 그래서 쓰임이 좋지 않다. 그러나 꼭 그런 경우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잃다’의 뜻도 있다.
위에 적은 유망(流亡)의 글자 조합이 그렇다. 일정한 거처를 잃고 떠도는 일을 이렇게 적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살펴볼 말이 망명(亡命)이다. 이 단어를 자칫 잘못 이해하면 ‘목숨(命)이 없어지다(亡)’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사전적인 뜻은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제가 살던 곳을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다.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이 단어의 뜻풀이는 대개 이러하다. 우선 앞의 亡(망)은 ‘빼내다’ ‘없애다’의 의미, 뒤의 命(명)은 ‘이름’ 또는 ‘호적’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단어의 뜻은 ‘(원래 살던 곳에서) 이름을 지우고 빠져나감’이다. 이 때문에 망명은 도망(逃亡)의 동의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망명은 또 ‘죽음을 무릅쓰다’는 의미도 있다. ‘없다’라는 앞글자의 새김, ‘목숨’이라는 뒷글자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사용한 경우다. 이 뜻은 다시 발전해 ‘목숨 걸고 덤비다’의 의미도 획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살던 곳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목숨 걸고 넘은 북한 병사의 동영상이 화제다. 그 북한 군인의 행동에서 우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공기처럼 흔하지만 없으면 살아가지 못할 그런 자유의 가치 말이다. 우리는 그런 대한민국의 토대를 제대로 다지고 있는 것일까.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