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엔지니어다. 어느새 기술자들의 '경영 시대'가 온 것 같다. 영업적으로 수완이 좋은 경영자들이 기업경영을 맡아왔다면 이제는 기술력이 곧 영업력이다. 기업 성장에 핵심 요소인 혁신성도 학계가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완성된다고 본다."
오춘택 엠플러스 대표(57·사진)는 10년 전부터 세계 최초의 '차폐 자석(Shield Magnet)' 제조기업을 이끌고 있다. 1986년 LG전자에 입사한 오 대표는 11년간 다니던 회사를 나와 당시 문자메시지 서비스기업(텔컴전자)을 세워 처음으로 창업에 도전했다.
첫 사업 이야기를 꺼낸 그는 한동안 시선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통신대기업 A사와 소송이 벌어진 탓에 부도를 경험하고 빚 청산으로 보낸 8년여간 세월이 한꺼번에 떠오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랬던 오 대표가 20대 아들에게 놀림 받는 이야기로 다시 웃어 보였다. 그는 "아들이 아직도 '집에서 속옷만 입고 개발하던 분이 성공했다'면서 놀린다"고 했다.
오 대표는 속옷 차림으로 개발한 '차폐 자석' 하나로 2007년 재창업에 나서 혈혈단신으로 삼성과 LG그룹에 자석 부품을 납품했다. 올해는 글로벌 글로벌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인 엔비디아의 협력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 '차폐 자석'은 무엇인가.
"실드 마그넷(차폐 자석)이란 이름은 사실 직접 만든 이름이다. 자력으로 인해 전자제품에 '이상 현상' 등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을 반사하거나 흡수(차폐)해서 시스템 기능을 향상시키는 자석이 실드 마그넷이다. 우리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자력제품과 차폐제품을 별도로 사용해왔다. 이러한 기능을 자석 하나에 탑재한 것이다."
▶ 마그넷은 어디에 쓰이나.
"지금은 휴대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디바이스의 주요 부품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자석이 포함된 다양한 형태의 모듈(부품 집합) 분야로 확장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자동차업계에서 자석 수요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다. "
▶ 자율주행차와 연관성을 설명해달라.
"전기차와 함께 자율주행 시대가 다가오면서 차체에 전장부품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전장부품은 자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동시에 차폐 기능이 필수적이다. 자력은 통상 전기적으로 영향을 주는 탓에 이 영향을 확실하게 방지해야 '안전'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자석을 어떻게 개발했는지.
"LG그룹에서 나오기 직전까지 통신 품질관리(QC) 부문을 총괄했었다. 첫 창업에 실패하고 나서 재기를 노리던 중 가장 작은 부품부터 시작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자석을 알게 됐고 기술자로서 연구하다보니 자력 유도 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점을 하나씩 해결해 자력 유도와 차폐 기능을 하나의 자석에 담을 수 있었다."
▶ 창업을 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강원도 양양에서 방앗간집 아들로 태어난 영향으로 어릴적부터 집안에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놀았다. 대학에 가서도 기계공학을 공부했는데 항상 작은 부품이라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가슴 한켠에 대학까지 국공립 교육을 받게 해 준 나라에 보답하려면 내 손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야 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 혈혈단신으로 삼성과 계약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올해로 6년째 삼성그룹에 실드 마그넷을 납품 중이다. 6년 전에 이 자석을 납품하기 위해 삼성그룹 홈페이지에 직접 글을 썼다. 몇 개월쯤 지나서 삼성쪽에서 연락이 왔다. 구매쪽 담당자와 함께 삼성그룹 내 개발자들을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10여분 만에 납품할 수 있게 됐다. 개인적으로 가장 드라마틱한 상황이었다."
▶ 엔지니어로 살아오다 경영을 맡았다.
"이제는 시대적인 요구가 기술력이다. 기술자의 경영시대인 것 같다. 그 동안 영업적으로 수완이 좋은 경영자들이 많이 성공했는데 지금은 과거의 영업력이 사업하는데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대부분 시장이 오픈 마켓이라서 인적 네트워크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부품 가격이 싼데 품질도 좋다면 완제품의 경쟁력은 당연히 높아진다. 기술력이 곧 영업인 시대다."
▶ 경영자로서 하루 일상이 궁금하다.
"하루에 5시간 정도 잠을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잠에서 깨면 CNN BBC NHK CCTV 등 해외 뉴스 채널을 돌려본다. 우리나라와 다른 시선으로 사는 이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다. 머리를 맑게 하려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거나 산책을 하고 집을 나선다. 요즘엔 연구·개발에 좀처럼 몰입하지 못한다. 사내 엔지니어들에게 일을 맡기는 대신 직원 복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
▶ 자본투자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데.
"당장 운영자금을 마련하려고 상장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상장 전까지 벤처캐피탈 등 기관투자자의 자본투자 역시 받을 생각이 없다. 사실상 엠플러스의 지분 100%를 보유 중인데 상장 시 일반공모를 통해서만 지분을 나눌 예정이다. 영업적이든 기술적이든 파트너십이 필요한 경우에 상호출자 등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지만,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본투자에 대한 니즈는 현재로선 없다."
▶ 그렇다면 기업을 공개(IPO)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현재 개발 중인 신제품이 상용화될 수 있는 3~4년 뒤에 필요한 자금수요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실드 마그넷 다음으로 나올 신제품은 훨씬 파괴적이라고 본다. 개발 단계라서 공개하기 어렵지만 신재생에너지쪽 제품으로 볼 수 있다. 개발비용은 보유자금으로 충당할 수 있어도 상용화 단계에 들어서면 비용의 단위가 달라질 것이다. 그 시기에 급하게 상장하기보다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적절한 경영전략이라고 판단했다."
▶ 경영 철학을 들려달라.
"얼마 전에 일본의 한 정신과 의사가 수만 명의 환자를 진료하면서 얻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책을 냈는데 인생 성공의 법칙 중 하나로 '도덕 경영'을 꼽았다. 동감한다. 성공하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입장인데 지금을 성실하게 살면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경쟁우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살다보면 신의와 신망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오 대표는 지난 3년간 거르지 않고 매주 한 시간가량 전직원(50여명)과 만나 스킨십을 한다. 막내 직원까지 모인 회의실에선 다시 엔지니어로 변신한다는 오 대표. 엠플러스의 직원이라면 기본적으로 제품과 기술력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오 대표는 지난 6월 하나금융투자와 상장주관 계약을 맺고 2018년에 증시 입성을 준비하고 있다.
정현영 한경닷컴 기자 j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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