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 파는 450mL 위스키… '폭탄주 문화'가 용량 줄였다

입력 2017-11-20 22:03
이유정 기자의 알고 마시는 위스키


[ 이유정 기자 ] 외국에서 위스키를 병으로 주문해 본 적이 있으신지. 주변에는 멋모르고 한 병을 주문했다가 당황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이 적지 않다.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라진다. 그리고 한쪽에서 위스키를 따 한 잔 한 잔 주전자 비슷한 그릇에 따른다. 한 병씩 팔아본 적이 없는 종업원이 가격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몇 잔 나오는지 확인하고 잔당 가격을 곱해 역추산하는 긴 절차(?)가 끝나면 이를 다시 병에 담아 가져온다. 주변 손님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한국처럼 병째 주문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위스키 용량은 700~750mL다. ‘양주 좀 마셔본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병 크기와는 사뭇 다르다. 윈저 임페리얼 골든블루 등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위스키의 용량은 450mL. 조니워커나 발렌타인 등 외국 브랜드들도 한국에선 대용량과 함께 이 중간 용량 제품을 판다.

450mL 위스키는 한국에만 있다고 한다. 용량의 변화는 1994년 진로가 500mL 임페리얼을 내놓은 게 시작이었다. 진로가 ‘세계 최초’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선 업계에서 반신반의하지만, 존재감 없던 500mL 용량 위스키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만은 다들 인정한다. 당시를 기억하는 업계 사람들은 “정말 센세이션했다”고 얘기한다. 이후 줄줄이 비슷한 용량 제품이 나왔다. 450mL로 다시 한번 줄어든 것은 가격 인상이 어려워진 업체들의 고육지책이었다는 게 ‘다수설’이다.

양주는 왜 한국에 상륙해 용량이 달라졌을까. 이는 위스키를 마시는 문화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 양주의 대부분은 유흥업소에서 소비됐다. 영업이나 접대를 위한 자리였다. 주로 폭탄주 ‘뇌관’으로 쓰였다. 이런 방식으로 서너 명이 마시기에 750mL는 좀 많았다. 그렇게 찾은 적정한 용량이 450~500mL였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약간 모자란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한 병을 더 시킨다. 이는 양주를 파는 업소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둘이 마시다가 한 잔이 모자라 한 병을 더 시키게 되는 소주처럼 가장 많이 팔 수 있는 용량을 찾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비싼 싱글몰트 위스키도 한국에선 용량이 바뀌었다. 에드링턴 코리아가 2013년 맥캘란 12년산 500mL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시한 이후 싱글톤, 글렉피딕 등 여러 싱글몰트 위스키 브랜드도 500mL 용량을 내놨다.

요즘은 또 다른 변화가 생기고 있다. 200mL 작은 병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혼술’ ‘홈술’을 즐기는 사람이 늘자 이 수요를 공략하기 위해 업체들이 용량을 줄였다. 지난해 조니워커레드를 시작으로 발렌타인, 제임슨 등이 잇따라 200mL를 내놨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조니워커레드의 소용량 판매는 9032상자(1상자=9L)에 달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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