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마지막 쇼군'

입력 2017-11-20 17:37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매슈튜 페리 제독이 이끈 미국 군함 4척이 일본 에도만(현 도쿄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53년 7월8일 새벽이었다. 선체를 검게 칠해 흑선(黑船)으로 불렸다. 흑선 출현은 일본 사회에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한 일본인의 표현대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쇳덩어리 배에서 나온 한 발의 포성은 도쿠가와 막부(幕府·무사정권) 체제의 긴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순간”이었다.

일본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정신적 지주로 꼽히는 요시다 쇼인(당시 23세)도 흑선을 둘러보고 충격을 받았다. 흑선은 구미 열강과 일본의 문명 격차를 실감케 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배도 대포도 적수가 안 된다”고 썼다.

이듬해 1월 페리 제독이 군함을 다시 이끌고 왔다. 일본은 미국과 화친조약을 맺고 강제 개항했다. 요시다는 서양강국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이 배를 타고 밀항을 시도했다가 잡혀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감옥에서 “서양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먼저 서양을 알고 배워야 한다”는 내용의 ‘유수록(幽囚錄)’을 썼다. 이 책으로 인해 요시다는 메이지유신 이후 ‘탈아론(脫亞論·탈아시아론)’을 펼친 후쿠자와 유키치와 함께 일본 부국강병론의 사상적 밑거름을 제공해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시다는 감옥에서 풀려난 뒤 고향(야마구치현)에서 학당인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세워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이 제자들은 막부를 무너뜨리는 주도세력이 됐다. 결국 1867년 막부가 천황에게 통치권한을 되돌려주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이뤄졌다.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국 제패로 수립돼 260년 넘게 일본을 실질적으로 통치한 에도 막부가 무너진 것이다. 이듬해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은 일대 변혁의 길로 들어섰다.

힘을 키운 일본은 미·일 화친조약을 맺은 지 22년 뒤인 1876년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나 개항을 요구하며 무력시위를 펼쳤다. 그 결과는 조선과 불평등 조약(강화도조약) 체결이었다. 정한론(征韓論·조선침략론)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대정봉환 때 ‘마지막 쇼군(將軍: 막부의 수장)’은 도쿠가와 요시노부. 그는 막부 타도파들과 벌인 마지막 전쟁에서 우월한 군사력을 갖고도 너무 쉽게 항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황이 막부 타도파로 넘어간 만큼 더 이상 싸움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대신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았고, 자신의 영지(領地)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천수를 누린 끝에 1913년 11월22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만약 그가 막부 타도파들과 끝까지 혈전을 벌였다면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근대화는 늦춰졌거나 아예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론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한 것이지만….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