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의 데스크 시각] 박근혜의 김종인 vs 문재인의 김광두

입력 2017-11-19 18:09
수정 2018-08-07 14:48
정종태 경제부장 jtchung@hankyung.com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김종인은 ‘신의 한 수’였다. 2012년 대선에서 김종인을 영입해 경제민주화를 내세운 전략은 주효했다. 야당 슬로건을 여당에 빼앗긴 당시 민주당은 초반부터 끌려다니는 선거를 했다. 하지만 그런 김종인도 선거 종반에 박근혜에게 ‘팽’을 당했다. 경제민주화 공약 수위를 놓고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박 후보와 선거 참모 8명에 둘러싸여 난타를 당한 후였다. 그는 다음날 경제민주화 공약 발표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 뒤로 모습을 감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보수 학자 김광두를 영입한 것 역시 절묘했다. 표의 확장성에선 적지 않은 효과가 있었다. 박근혜에게 김종인은 선거용에 불과했지만 문 대통령에게 김광두는 선거 전략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문 대통령의 삼고초려에도 거절하던 김광두가 마음을 돌린 것은 “경제가 잘 되도록 와서 균형을 잡아달라”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선거에 이기고 나서도 김광두에게 중책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을 맡겼다. 인선을 발표할 때는 직접 김 부의장 손을 잡고 청와대 춘추관에 나와 “저와 다른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보던 분이지만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손잡아야 한다”고 했다.

보수학자 영입 절묘했지만…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적어도 현재까진 그렇다. 김 부의장은 여전히 문재인 정부에서 본인의 역할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정책이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만 가면 본인이 반대 쪽으로 잡아당겨 최소한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거나, 현 정부 정책 참모나 장관들이 놓친 아젠다를 찾아 빈틈을 메우는 게 본인의 존재 이유라고 본다. 새 정부가 출범 후 ‘소득주도 성장론’에 기반한 정책을 쏟아낼 때 ‘산업 구조재편’을 고민하며 일선 부처 관계자를 불러 수차례 회의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문 대통령은 김 부의장 인선을 발표할 때 “경제를 살리는 데 국가 역량을 모으기 위해 국민경제자문회의를 활성화하려 한다”고 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경제 관련 주요 정책 방향을 대통령 곁에서 보좌하는 헌법상 최고 자문기구다. 일부에선 미국 백악관의 국가경제위원회(NEC)처럼 역할이 커질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김 부의장도 “문 대통령에게 NEC를 모델로 한 ‘한국형 NEC’안을 설명드렸고, 이에 (대통령이) 공감했다”고 한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 지렛대 역할 할까

하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 후 6개월이 지났지만 국민경제자문회의를 한 번도 소집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자문회의는 위원 구성조차 안 돼 공식 출범을 못하고 있다. 30명의 자문위원 명단이 최근 청와대에 올라갔지만 다른 인선에 밀려 감감무소식이다. 김 부의장이 9월에 열겠다던 ‘산업 구조재편’ 회의도 그냥 지나갔다. 주변에선 청와대 참모 견제로 김 부의장 역할이 전혀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김광두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면전에서 ‘쓴소리’를 던졌다가 내쳐진 고집 센 학자다. 그를 아는 사람은 김광두의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나름대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국정을 이끌면서 측근 참모그룹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스스로 견제하기 위해 이헌재 정덕구 같은 보수 관료를 불러 “우리를 오른쪽으로 끌고가라”고 부탁하곤 했다. 문 대통령이 김 부의장을 박근혜의 김종인처럼 ‘팽’시킬지, 아니면 정부 성공에 요긴하게 쓸지 자못 궁금하다.

정종태 경제부장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