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근로시간 유연화' 미룰 이유 없다

입력 2017-11-14 18:23
"'9 to 5' 근무는 19세기 방식
경직된 근로시간에 탄력성 부여
성과중심 근무형태 가능케 해야"

이상희 <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노동법학 >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 보면 장시간 근로 국가라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 근로시간 단축이 불가피하다는 것인데, 이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휴일근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과제가 남아 있어서다.

휴일근로를 1주간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면 중복할증임금이 추가되고, 1주간 연장근로 한도에 저촉되는 휴일근로도 금지된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면 인건비는 증가하고 실근로시간은 대폭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근로시간 단축 해결을 둘러싼 갈등이 있어 왔다. 더욱이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여부는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계류돼 있어 정책적으로 풀지 못하면 사법부의 결정에 맡기는 것으로 된다. 다만 중복할증임금 및 실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일련의 갈등에 대해 그간 노사정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돼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근로시간 단축의 당위성이 명확한 만큼 책임 있는 당사자 협의 및 정치를 통해 마지막 매듭을 풀어야 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근로기준법 개정 불발 시 행정해석 폐기” 발언도 이 문제의 빠른 처리를 독려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근로시간 단축 매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현행 근로시간제도는 1953년 제정 후 수차례 고쳐졌지만 근간은 19세기 공장에서 일하던 생산직 근로자를 표준으로 제정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9 to 5(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식의 근로시간은 초기 산업혁명 시대의 공장제에 맞는 제도다. 고정적인 일거리가 있고 기계에 앉아 있는 시간이 곧 임금으로 계산되는 시대의 근로시간 제도가 1일 8시간, 1주 40시간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기의 노동방식은 공장제 근로시간 계산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야기할 수 있다. 앞으로는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앉아 있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생산성이나 성과를 달성했는가가 중요해진다. 제조업 공장제 근로방식보다는 서비스업이나 사무직 디지털 근로방식이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현행 생산직 공장제 근로시간 제도는 디지털 근로나 사무직 근로방식에 적용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근로시간 규율 방식을 공장제 방식에서 탄력성과 유연성을 강화해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와 같은 장시간 근로 관행하에서 4차 산업혁명기에 필요한 근로시간 유연화를 강조하는 것은 상당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 근로시간 유연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자칫 현실과 제도의 괴리를 가져와 장시간 근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한 채 경영계의 요구만 반영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휴일근로 문제, 포괄임금제, 근로시간 특례제도 등이 장시간 근로의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 OECD 주요국에서도 근로시간 단축과 더불어 시장의 수요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근로시간의 유연화가 진행돼 왔다. 주 5일제 ‘9 to 5’식의 표준화된 근무형태는 변화가 많은 시장과 고객의 수요에 대응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고객의 요구에 즉각 대응할 수 있게 다양한 근무형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업장 외에서 일하는 다양한 근무방식 때문에 비롯될지 모르는 근로시간 계산을 둘러싼 분쟁이나 소송에 대비할 필요도 있다.

특히 창조적 업무는 시간이 아니라 성과로 평가되는 근로형태여야 하므로, 고도의 전문적 능력을 지닌 근로자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여건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 연간근로시간저축계좌제, 스마트워크 등과 고소득 화이트칼라에 맞는 근로시간제도 검토해야 한다. 유연화에 수반될 만한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 과도한 야간근로 제한, 1일 내지 1주 최소연속휴식시간 보장 등과 같은 건강보호 장치를 포함한 근로시간 제도 개선 로드맵이 요구된다.

이상희 <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노동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