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군법회의에 회부된 '미 공군의 아버지'

입력 2017-11-13 18:22
진주만 피습 전 제공권 강화 기회 놓친 미국
조직의 방어적 속성이 혁신을 가로막은 탓
내부저항 우회 '백신전략'으로 변화관리를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


북핵 사태와 같은 안보위기가 발생하면 미 해군 항공모함과 미 공군 전략폭격기는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단골손님이 된다. 세계 각지에서 출현했다는 소식만으로 인근 적성국을 긴장시키는 전투력의 핵심은 제공권이다. 세계 공군력 순위에서 미 해군이 2위, 미 공군이 1위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대적할 상대는 없다. 이렇듯 강력한 공중전투력을 자랑하는 미군에서 100년 전 공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육성을 주장한 장군은 군법회의에 회부돼 강제 예편된 아이러니가 있다.

윌리엄 미첼은 1879년 태어나 1898년 미 육군에 입대, 통신장교로 복무한다. 비행기에 흥미를 느껴 38세에 비행교육을 받고 파일럿이 돼 1917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유럽에서 공중전을 경험한다. 종전 후 준장으로 진급해 프랑스 주둔 미 육군 항공단장이 된 미첼은 미래 전투력의 핵심은 공중전력이라는 신념으로 육군, 해군에서 공군의 독립을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기존 체제에서 공군이 추가된 3군 체제로의 변화를 반기지 않았던 육·해군 지휘부와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더하여 당시 나무로 제작한 날개 2~3개의 비행기가 대포, 기관총으로 무장한 거대 육군을 제압하고, 수만 t의 해군 전함을 격침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었다.

정면승부에 나선 미첼은 1921년 7월 비행기 폭탄 공격으로 폐(廢)전함을 침몰시키는 공개시범까지 보였으나 갈등은 더욱 커졌다. 1925년 10월 미첼은 상관모독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돼 자격정지를 받자 군을 떠났다. 1924년 보고서에서 “언젠가 일본은 태평양에서 우위를 걸고 미국과 전쟁을 불사할 것입니다. 일본의 전쟁개시는 어느 날 동틀 무렵 항공모함 함재기들이 은밀히 진주만, 스코필드 병영 및 항공기지를 공습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입니다”고 한 예언은 17년 후 현실이 됐다. 미첼은 1936년 세상을 떠났고, 2차대전이 끝난 1947년 미 공군이 창설되면서 명예회복이 돼 ‘미 공군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공교롭게 미첼보다 앞서 공군력의 중요성을 주장해 ‘현대 공군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이탈리아의 줄리오 두에 장군은 1916년 군사재판에 회부돼 감옥살이까지 했다. 두 사람 모두 시대를 앞서간 혁신적 발상 때문에 현역시절 고초를 겪었던 점에서 기존 사고방식의 두꺼운 벽과 변화를 거부하는 조직의 방어적 속성을 실감하게 된다.

인간의 신체가 외부 세균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항체와 면역시스템을 진화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든 조직도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항체와 면역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조직은 기존 질서에 변동을 가져오는 외부자극에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때로는 조직적 저항까지 생겨난다.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 변화로 인한 미래의 기대이익은 모호한 반면 감수해야 하는 현재의 손실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리더가 변화를 시도하는 경우에도 ‘총론 찬성, 각론 반대’로 곤경에 처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데, 일개 조직구성원이 주장하는 변화는 사방팔방의 비난과 압력으로 질식사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하지만 격변의 시기에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리더로서는 이런 저항을 극복하는 변화관리 전략이 필요하다. 요체는 내부항체를 우회해 반발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변화를 추진하는 신생조직을 소규모로 시작해 내부적으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독립적 운영으로 내부 역학관계에서 가능한 한 분리시키는 방향이다. 인체에 침투하는 바이러스가 초기에 주변부로 침투해 면역체계를 우회하면서 교두보를 구축한 다음 세력 확장에 나서는 것에 비유한 ‘백신전략’의 개념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격변의 시기를 맞아 제조업 위주의 한국 기업들은 전방위적인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접근에 대한 조직 내부의 우려와 반발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백신전략은 유효한 경로다. 또 조직의 리더는 미첼 장군의 사례에서처럼 내부에서 생성되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집단적 역학관계로 사장될 가능성을 언제나 경계하고 긴장해야 한다.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