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장 형사처벌 위기
"조교 458명 수당 미지급… 근로기준법 등 위반 혐의"
'학생 신분으로 장학금 받는데 퇴직금 주는 근로자라니' 반론도
채용 주체·업무성격 따져봐야
법조계 "모든 조교가 교직원과 같은 업무한다고 볼 수 없다
근로자 지위 일률 적용 어려워"
[ 이현진/김주완/황정환 기자 ] 대학교의 조교는 학생일까, 근로자일까.
동국대가 대학원생 조교에게 4대 보험·퇴직금 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장이 형사처벌될 위기에 놓였다.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던 학생 조교들이 대학 측을 고발해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이 대학과 사정이 비슷한 만큼 앞으로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고발이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 고용노동부는 조교도 근로자라는 입장이지만 국민정서나 상식적인 판단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고용부 “대학원생 조교도 근로자”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한태식 동국대 총장(보광스님)이 근로기준법·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사건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12일 발표했다. 서울고용청에 따르면 한 총장은 대학원생 신분 행정조교 총 458명에게 4대 보험을 보장하지 않고 퇴직금·연차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대학원생 조교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는 대학가에서 1~2년 전부터 불거진 뜨거운 쟁점이다. 학생 행정조교들의 업무 범위와 시간이 명확하지 않은 게 문제의 발단이다. 경우에 따라 전일제로 근무하면서 교직원과 비슷한 업무를 하는 일이 왕왕 일어났다. 이번 동국대 행정조교 사태도 이 같은 맥락이다.
동국대 대학원총학생회는 지난해 12월 한 총장과 임봉준 동국대 법인 이사장(자광스님)을 고발했다. 대학원생 행정조교가 하는 일이 일반 교직원 업무와 다르지 않은데도 조교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의 보강수사 지휘를 받아 1년 가까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고용청은 학생 조교의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지난 9월 고용부가 이 같은 지도방침을 내놓은 바 있고, 이전에도 조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행정해석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서울고용청 관계자는 “동국대는 2010년 이전까지는 학생 행정조교에게도 퇴직금과 수당 등을 지급해왔다”며 “사용자로서 한 총장이 조교의 근로자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측면에서 범행 고의성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다만 동국대 정관 시행세칙상 조교의 사용자는 총장으로 한정돼 임 이사장은 검찰 송치에서 빠졌다.
동국대는 올해 1학기부터 문제를 인정하고 제도를 개편했다고 설명했다. 동국대 관계자는 “고발 이후 학생 행정조교 제도를 개편해 근무시간과 업무범위 준수, 인권침해 행위 금지 등을 준비하고 있다”며 “다른 대학보다 앞선 첫 사례가 된 만큼 책임감을 갖고 행정처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대학도 동국대와 비슷 … 파장 클 듯
고용부가 근로자성을 인정했지만 모든 대학원생 조교가 근로자로 인정받기는 힘들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법무법인 화우의 홍성 변호사는 “조교 선발 방식이 학교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조교가 교직원과 같은 업무를 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채용 주체와 업무 성격을 면밀히 따져서 사안별로 검토해야지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근 조선대에서는 교수가 임의로 채용한 연구조교가 퇴직금을 요구하며 고용노동지청에 신고했으나 검찰에서 무혐의가 나오기도 했다. 채용 주체와 업무 성격을 봤을 때 근로자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고용부 관계자도 “조교 모두가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대법원 판례에 따라 업무 등에서 종속성이 인정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조교로 활동하면서 교수를 보조한다거나 학교 사무를 보조하는 일 등을 할 경우 업무 종속성이 인정된다는 설명이다.
조교는 기본적으로 학업에 종사하는 학생이라는 반론도 여전히 높다. 서울시내 대학생 김모씨는 “학생으로 보기 때문에 장학금도 받는 것 아니냐”며 “조교가 노동자라는 판단은 시류에 영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논란과 별개로 경희대 서울대 한양대 등은 최근 학생 행정조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중이다. 4대 보험과 퇴직금 등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대학은 동국대와 마찬가지로 학생 행정조교 제도를 운영 중이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관행적으로 끌어오던 학생 조교 제도를 점검해야 할 때가 왔다”며 “동국대 건으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면 제도 개선을 위한 절차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현진/김주완/황정환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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