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비온 뒤 땅 굳어"…'사드 책임' 쐐기 박으며 "새로운 출발" 얘기한 시진핑
문 대통령 방중 때 양국 간의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
경제 관련 실질 대화는 리커창 총리와 할듯
"잘 들리십니까."
지난 11일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 베트남 다낭 크라운플라자 호텔 회담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회담 시작 후 문재인 대통령의 동시통역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직접 확인했다.
그리고는 “다시한 번 말씀 드린다. 문 대통령님 다시 만나 아주 기쁘다”고 말했다.
자신의 발언이 시작됐을 때 동시통역기가 준비되지 않은 문 대통령을 배려해 다시 한 번 인사를 건넨 것이다. 두 정상이 맞춰 입은 듯 붉은색 계열의 넥타이를 맨 것도 눈에 들어왔다.
◆시종일관 ‘훈훈’
지난 11일 만난 한·중 정상은 한층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고 배석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전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달 31일 한·중 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관련 ‘관계 개선 협의문’ 발표하고 11일만에 이뤄졌다. 지난 7월 독일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서 첫 만남 이후 4개월만의 정상회담이다. 두 정상은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가량 넘기며 북핵 문제와 관계 회복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한국 속담과 ‘매경한고(梅經寒苦·봄을 알리는 매화는 겨울 추위를 이겨낸다)’라는 중국 사자성어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한·중 관계가 일시적으로 어려웠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의 소중함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며 “한·중 간에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할 수 있도록 양측이 함께 노력하길 바라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도 “양국은 경제사회 발전, 양자관계의 발전적인 추진, 세계 평화의 발전에 있어서 광범위한 공동의 이익을 갖고 있다”며 “오늘 회담이 양국 관계 발전과 한반도 문제에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시 주석은 평창올림픽에 맞춰 방한을 요청하는 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서도 “노력하겠다. 만약 가지 못한다면 고위급 대표담을 보내겠다”며 성의있는 태도를 보였다.
◆習 “사드 배치 책임있는 자세 촉구”
당초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사드가 의제로 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시 주석은 “사드 배치와 관련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한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회담 초반 사드 관련 기존 입장을 확인했고, 현재 상황에서는 양국 간 미래 지향적인 관계 발전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도 “사드 배치가 중국을 겨냥한 것 아니다”라는 합의문에 담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재차 설명했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청와대가 “한·중 관계 협의문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시 주석이 한국 정부에 ‘3불(不) 원칙’과 관련 ‘쐐기’를 박았다는 해석도 나왔다. 3불 원칙은 △사드 추가배치를 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방침을 말한다. 시 주석이 사드 관련 대화를 나눈 후 “새로운 출발이고 좋은 시작”이라고 말한 것도 한국 정부가 관계 협의문 발표 전 중국 측에 밝힌 3불 원칙에 만족감을 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사드 보복 조치 논의는 없었어
시 주석은 남북대화에 대해서도 지지할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양국 정상은 북핵 문제를 궁극적으로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드 보복 조치 등 경제 분야에 관한 논의는 오고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다음달 중국에 방문하면 관련 대화를 심도있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청와대는 내다봤다. 13일부터 필리핀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계기에 리커창 중국 총리와 만나면 실질적인 얘기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방중 때 양국 간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기로 한 데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포괄적’이라는 단어에 경제 문제가 포함된다는 의미였다. 문 대통령은 베트남 다낭에서 2박3일간 일정을 마치고 12일 이번 동남아 순방의 마지막 국가인 필리핀으로 이동했다.
다낭=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