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인도네시아의 재발견

입력 2017-11-09 17:54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1만8200여 개 섬으로 이뤄진 세계 최대 섬나라, 인구 2억6000여 만 명의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 국토의 동서 길이가 미국 본토보다 긴 나라….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 인구대국이자 동남아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진 나라다. 국명은 19세기 영국 학자가 명명한 것으로 ‘인도양의 섬들(네시아)’이라는 뜻이다.

인구의 80%는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에 산다. 남한보다 조금 큰 자바섬에만 전체의 55%인 1억3500만 명이 몰려 밀도가 가장 높다. 국토의 최동단인 뉴기니섬은 남한의 8배. 이 섬의 절반은 인도네시아, 절반은 파푸아뉴기니 영토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발리는 남부 소순다열도에 있는 경기도 절반 규모의 섬이다.

무슬림 수가 87%나 되지만 국교가 이슬람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유럽의 식민통치와 군부독재 과정을 거치는 동안 중동 국가보다 규범이 느슨해지고 세속화됐다. 네덜란드 등 서구의 오랜 선교와 이주민인 화교들의 개종으로 기독교 인구도 전체의 10%나 된다.

동서교통의 요지여서 예부터 문화적·민족적 교류가 잦았다. 초기엔 인도 문화와 힌두교·불교, 14~17세기엔 이슬람 영향을 크게 받았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문화가 들어오면서 남부 말루쿠제도에는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혼재해 있다.

말루쿠제도의 암본섬은 북부의 이슬람과 남부의 기독교로 확연히 갈린다. 하나의 섬 안에서 가장 첨예하게 문명의 충돌이 빚어지는 곳으로 꼽힌다. 천주교의 동방 진출 교두보였던 이 섬은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의 식민지배를 차례로 받으면서 종교전쟁까지 겪었다.

그 배경에는 유럽인들을 매료시킨 명품 향신료가 있었다. 네덜란드는 이곳을 ‘향료의 섬’으로 부르며 동인도회사의 무역거점으로 삼았다. 마르코 폴로도 《동방견문록》에서 “육두구 등 진귀한 향료가 많아 선박과 상인들이 이 섬에 와 물건을 사고 큰 수입을 올린다”며 “얼마나 재화가 많은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썼다.

인도네시아에는 향료뿐만 아니라 목재와 원유, 가스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우리나라 수입품의 80%가 원자재다. 한국의 수출품은 전자부품과 금속제련 등 첨단제품이 대부분이다. 잠수함과 전투기도 주요 품목이다. 최근엔 현지에 공장을 세우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현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산업·교통 등의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민간기업들도 10여 개의 협약을 맺었다. 전날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세안과의 교류·협력을 4대국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약속한 대로 아세안 지역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섬’과의 경제 협력이 풍성한 결실을 보길 기대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