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되찾은 '미사일 주권'

입력 2017-11-08 18:02
1978년 9월26일, 충남 태안군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시험장. 미국 나이키-허큘리스(Nike-Hercules·일명 나이키) 미사일을 꼭 빼닮은 탄도미사일 ‘백곰’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한국이 세계에서 일곱 번째 탄도미사일 보유국이 되는 순간이었다.

백곰은 나이키와 똑같이 허큘리스 엔진을 사용했지만, 핵심 장치와 소프트웨어 등 90%를 국산화했다. 사거리는 180㎞로, 백령도 등 서해 5도에서 쏘면 평양을 타격할 수 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1년부터 극비로 진행한 ‘백곰 프로젝트’가 7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주변국들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핵 개발 의혹을 받고 있던 한국이 핵을 실어나를 수 있는 운반체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국이 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는 것은 핵 개발도 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소련은 ‘한국의 핵 개발을 경고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ADD를 방문해 백곰 개발 과정을 캐물었다. 위컴 사령관은 1979년 7월, 노재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라”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우리 정부는 거센 압력에 “미국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사거리 180㎞ 이내)으로 제한하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답신 내용이 이른바 ‘한·미 미사일 지침(Missile Guideline)’이 됐다.

미사일 개발은 1979년 박 전 대통령의 서거로 중단됐다가 1983년 북한의 아웅산 테러를 계기로 재개됐다. 우리 군은 1986년 백곰을 개량해 정밀도를 높인 탄도미사일 ‘현무-1’을 선보였다.

한·미 미사일 지침은 2001년 1월(사거리 300㎞·탄두 중량 500㎏ 이내)과 2012년 10월(사거리 800㎞·탄도 중량 500㎏ 이내), 두 차례 개정됐다. 탄도미사일은 현무-2A(사거리 300㎞), 현무-2B(500㎞), 현무-2C(800㎞) 등으로 진화했다.

우리 군은 사거리 제한을 받지 않는 순항미사일 현무-3A·3B·3C(사거리 500~1500㎞)도 실전 배치했다. 탄도미사일 기술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지면을 스치듯 날아가고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순항미사일은 사거리와 탄두 중량 규제를 받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탄도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폐지를 선언했다. 한·미 미사일지침에 따르면 탄두 중량과 사거리는 반비례 관계다. 2~5t 탄두의 사거리 800㎞ 미사일의 경우 탄두 무게를 줄이면 이론적으로 2000㎞ 이상 날릴 수도 있다. 군 안팎에서 “미사일 개발 ‘족쇄’가 38년 만에 사실상 풀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